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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GOD)

[하나님의 주권 27]

En Hakkore 2024. 5. 19. 07:50

구원과 성령 하나님의 주권

성령께서는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며, 성령의 사명은 하나님 택하신 자들에게로 한정된다. 성령께서는 이들을 위로하시고 인치시며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장차 될 일을 이들에게 보여주신다. 성령의 사역은 아버지의 영원한 목적을 필연적으로 성취해야 한다.

가정이지만 정중히 말하겠다. 만약 하나님이 죄인들을 위해 죽도록 그리스도를 내어주시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다면, 단 한 사람의 죄인도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죄인이든 자기 필요를 깨닫고 구주를 영접할 마음을 가지려면, 성령께서 그에게, 그의 내면에서 역사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이 죄인들을 위해(죽도록) 그리스도를 내어주시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을(구원 선포를 위해) 파송하시기만 했다면 - 죄인들이 자기 뜻대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거나 거부하도록 완전히 내버려주신 채 - 모든 죄인이 복음을 거부했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미워하고 하나님과 원수지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면, 죄인의 타고난 적대감을 꺾으려면, 죄인으로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을 받아들이도록 강권하려면,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다.

우리가 '강권하려면'이라고 말한 이유가 있다. 정확히 이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며. '혼인 잔치'의 비유를 생각해 보게 하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4장 16절을 보자.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청하였다." 이 장면과 마태복음 22장 2~10절을 비교해보면, 몇 가지 중요한 차이가 드러난다.

공통된 의견에 따르면, 각각은 동일한 비유에 대한 독립된 가사이며, 세세한 부분이 다른 이유는 두 복음서에서 성령의 목적과 계획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서는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왕으로 제시하신다. 따라서 마태복음의 기사는 이런 사실에 어울리게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이라고 말한다. 누가복음에서는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인자(son of man)로 제시하신다.

누가복음의 기사는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다.'고 말한다. 마태복음 22장 3절은 '그 종들을 보내어'라고 말하고, 누가복음 14장 17절은 '종을 보내어' 라고 말한다.

마태복음의 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종들'(servants)이라고 말하는 반면에 누가복음의 기사는 항상 '종'(servant)이라고 말한다는데 주목하라. 우리는 성경의 축자영감(verbal inspiration)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깨닫기에 마태복음에는 복수로 나오는 반면에 누가복음에는 단수로 나오는 데는 틀림없이 무슨 이유가 있다. 우리가 주장하건대 그것은 아주 중요한 이유이다. 마태복음의 '종들'은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모든 사람이지만 누가복음 14장의 '종'은 성령이다.

왜냐하면 성자 하나님이 지상 사역을 하시는 동안에는 여호와의 종이시기 때문이다(사 42:1). 마태복음 22장의'종들'은 세 가지를 하도록 보냄을 받았다는데 주목하라.

1. 종들은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불러야'한다(3절).
2. 종들은 "청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갖추었으나 혼인 잔치에 오소서"라고 말해야 한다(4절).
3. 종들은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청해야' 한다(9절).

이 셋은 지금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이다. 누가복음 14장에서도, 종은 세 가지를 하도록 보냄을 받는다.

1. 그는 "청하였던 자들에게...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라고 말해야 한다(17절).
2. 그는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와야 한다(21절)
3. 그는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와야' 한다(23절).

마지막 둘은 성령만이 하실 수 있다는 데 주목하라! 누가복음에서 '종' 곧 성령께서 '잔치'에 오라고 어떤 사람들을 강권하시는데, 우리는 여기서 성령의 주권을, 성령의 전능하심을, 성령이 완전한 하나님이심을 본다.

'강권하다.' 라는 단어는 성령께서 '데려오는' 자들은 스스로 오려 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게 분명하다. 우리가 앞 단락들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게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며(엡 2:3 참조), 따라서 이들의 마음은 하나님께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성령께서 이러한 '적대감'을 이겨내시고 이들을 '강권하여' 잔치에 들어오게 하신다. 그러므로 나머지 사람들이 바깥에 남은 까닭은 이들이 들어가려 하지 않을뿐더러 성령께서도 이들을 '강권하지' 않으시기 때문인 게 분명하지 않은가?

성령께서 주권적으로 능력을 행하시며, 바람이 '임의로 불듯이' 성령께서도 자신이 원하시는 곳에 역사하시는 게 분명하지 않는가?

간단히 정리해 보자. 지금까지 하나님의 방법들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을, 다시 말해 삼위일체의 각 위는 나머지 두 위와, 일치와 조화를 이루며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성부 하나님은 구원에 이루도록 어떤 사람들을 택하셨고, 성자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위해 죽으셨으며, 성령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살리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찬양해야 한다.♡

만복의 근원 하나님
온 백성 찬송 드리고
저 천사여 찬양하세
찬송 성부 성자 성령

Arthur W. Pink 하나님의 주권 p121

참고)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verbal inspiration)
성경의 용어 하나하나까지(언어,문체,표현 등) 영감되었다는 이론(렘 1:9; 고전 2:13; 딤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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