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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GOD)

[하나님의 주권 22]

En Hakkore 2024. 5. 18. 19:03

하나님의 제한된 목적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성경 구절들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죽음의 목적이 제한적이었다는 결론으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일반적인 원리를 살펴보았다. 이제 이러한 결론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분명한 성경 구절을 살펴보겠다.

이사야 53장에서 하나님은 아들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8절).

천사가 요셉에게 전한 말은 이 구절과 완벽하게 조화된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자기 백성' 즉, 이스라엘뿐 아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

주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모든 사람을 다 포함한다면 왜 굳이 '많은 사람의'(for many, 많은 사람을 위해)라고 말하겠는가?

그리스도께서는 다름 아닌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셨다"(눅 1:68, 그분의 백성을 구속하셨다). 선한 목자는 '염소들'이 아니라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렸다(요 10:11 참조).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행 20:28) 것은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 KJV)였다.

다음은 우리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뒷받침하는 말씀이다.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나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요 11:49-52).♡

이 구절은 가야바가 스스로 예언한 게 하니라고 말한다.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가야바가 하나님이 구약 시대에 사용하신 사람들처럼 말하고 있었다는 뜻이다(벧후 1:21 참조). 가야바의 예언은 스스로 한 말이 아니다.

가야바는 성령의 감동을 따라 말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말은 가치 있으며, 이 계시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게 분명하다. 이 구절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구체적으로 '그 민족'(the nation, 즉 이스라엘, 그리고 하나의 몸, 곧 그분의 교회)을 위해 죽으셨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하나의 몸'이 교회임을 안다. 그리스도께서는 열방중에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이다. 주목하라!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 전인데도, 교회 구성원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른다.

왜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인가? 하나님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들을 선택하셨기 때문이며, 그럼으로써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기"(엡 1:4-5, 예정하셨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다"(요 10:16, '있을 것이다.' 라고 하지 않으셨다). 고 하셨다.

십자가의 진정한 목적이 예수님이 마음과 말씀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한 때는, 그분의 지상 사역 마지막 주간이었다. 지금 우리가 탐구하는 부분과 관련해, 성경은 이 기간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는가?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5:13).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17:19).

이러한 구절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자신의 사람들, 즉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들을 위한 죽음이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제기되는 분명한 물음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면, 왜 이렇게 구체적인 용어를 사용하셨는가?"

이 부분을 마무리하기 전에, 그리스도의 죽음이 보편적이며 무제한적인 계획을 내포한다고 가르치는 듯이 보이는 몇몇 구절을 살펴보자.

고린도후서 5장 14절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이 구절이 말하는 전부는 아니다. 14절 전체와 앞뒤 문맥을 세밀하게 살펴보면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실이 있는데, 이것이 그리스도의 죽음의 목적이 제한적임을 당하게 논증한다는 것이다. 사실 14절 전체는 이렇게 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야 할 사실이 있다. 헬라어 본문에는 마지막의 '모든 사람' 앞에 정관사가 있으며, 여기서 사용된 종사의 시제는 부정관사이며 따라서 '우리가 판단하건대, 하나가 모두를 위해 죽었다면 모두가 죽은 것이다.'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바울은 한 사람이 어떤 사람들을 대신해 죽으면, 법적으로 그 사람들도 죽었다고 본다고 말한다.

그다음 절은 이렇게 되어 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 한 사람이 죽었을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났다.' 따라서 그가 대신 죽은 '모든 사람'도 다시 살아났다. 그래서 이 구절은 이들이 '살아 있다.'고 말한다. 대리자가 어떤 사람들을 대신해서 취한 행위는 법적으로 그들이 직접 취한 행위로 간주된다. 하나님도 그렇게 여기신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백성과 동일시되셨고, 그리스도의 백성은 그분과 동일시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죽었을 때 이들도 죽었으며(법적으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을 때 이들도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이 단락을 좀더 읽어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며, 법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새 생명을 가졌다는 내용이 나온다(고후 5:17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은 '모든 사람'은 이 순간부터 더는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은 '모든 사람'은 자신에 관한 법적 진실을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삶으로 나타내야 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자신들을 위해 죽은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한다.♡

Arthur W. Pink 하나님의 주권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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