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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GOD)

[하나님의 주권 23]

En Hakkore 2024. 5. 18. 19:04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해 죽었다.'는 말은 이런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은 '모든 사람'은 지금 '살아 있으며' '그분을 위해' 산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다음 몇 가지 진리를 배운다.

1. 어떤 사람들은 더는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도록 부름을 받는다.

2. 이들은 '살아 있는 자들' 즉 영적으로 살아 있는 자들이다.

3. 오직 하나님의 자녀만이 영적으로 살아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이 구절이 말하는 '모든 사람'과 '살아 있는 자들'이며, 그리스도께서는 이들을 대신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살아 있는' 자들은 자신의 허물과 죄를 죽은 모든 자들과 함께 약속 아래 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그리스도가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신의 '모든' 백성-택자들-을 위해 죽으셨으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결과로 이들이 '살아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만이 이렇게 '살아 있으며,' 이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이 삶을 '그분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이제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들을 '강권해야' 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과(단수 'mon'이 아니라 복수 'men'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의 총칭이며 인류를 의미한다)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랑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딤전 2:5-6).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라는 부분을 살펴보자. 성경에서 '모든' 이라는 단어는 사람에게 적용될 때 뚜렷이 다른 두 방식으로 사용된다.

첫째, '모든'이라는 단어는 때로 절대적 의미로 사용되는데, 예외 없이 '모두'라는 뜻이다.

둘째, '모든'이란 단어는 때로 상대적이거나 제한적인 의미로 사용되는데, 차별 없이 '모두'라는 뜻이다. 특정 구절에서 이 단어가 둘 중 어느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전후 문맥을 통해, 평행구절과의 비교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

'모든'이라는 단어가 상대적이며 제한적인 의미로 사용된 경우는 많다. 이것은 몇몇 구절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이런 경우, 어떻게 '모든'이란 단어가 예외 없이 '모두'가 아니라 차별 없이 '모두'인지 보여주는 예를 셋만 살펴보겠다.

1. "온(all)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all)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침(세)례를 받더라"(막 1: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의 모든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이 요단 강에서 침(세)례를 받았다는 뜻인가?이것은 예외 없이 '모두'가 아니라 차별 없이 '모두'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모든 부류와 모든 처지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동일한 설명이 누가복음 3장 21절에도 적용된다.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all)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요 8:2).

여기서 다(all)라는 단어는 절대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는가 아니면 상대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는가? '백성이 다'(모든 사람)라는 말은 예외 없이 '모두'라는 뜻인가? 아니면 차별 없이 '모두' 즉 '모든' 종류와 계층의 사람들이란 뜻인가? 후자의 뜻이 분명하다. 성전은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을 절대로 다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3. 사도행전 23장 15절을 보라. "네가 그를 위햐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여기서 '모든 사람은 인류의 모든 구성원을 의미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을 비춰볼 때, 디모데전서 2장 6절에 나오는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라는 말은 차별 없이  '모두'라는 뜻일 뿐 예외 없이 '모두'라는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국적(인종)과 세대와 사회 계층의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주셨다.

간단히 말하면 요한계시록 5장 9절이 말하듯이 '모든' 택자를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주셨다.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우리가 디모데전서 2장 6절의 '모든'이라는 단어를 제멋대로 정의한 게 아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20장 28절을 보면 분명해진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분이 예외 없이 모두를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주셨다면, 명확히 제한적 용어는 전혀 무의미하다. 더 나아가 디모데전서 2장 6절에 마오는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때가 이르면 증명되리라". KJV 직역)는 한정구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위해 자신을 주셨다면, 성경이 암시하듯이 다수가 영원히 멸망하는 상황에서 이것이 어떻게 '때가 되면 증명되겠'는가? 그러나 이 본문이 그리스도께서 국적, 사회적 명성, 나이, 성에 대한 차별 없이 하나님이 택하신 '모든' 자들을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주셨다는 뜻이라면, 이 한정구의 의미는 아주 분명하다. '때가 이르면' 이것이 이들 모두의 구원을 통해 '증명될' 것이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실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 2:9).

이 구절의 잘못된 번역에 근거한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이 있다. 그렇더라도 이 구절은 아주 간단하게 풀린다. 헬라어 본문에는 '사람'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이 추상적인 형태로 되어 있다. "그분은 모두를 위해 죽음을 맛보셨다"(개정역은 사람(man)이란 단어를 본문에서 정확히 했으나 이탈릭체로 삽입하는 오류를 범했다).

어떤 사람들은 '것(thing)이라는 단어를 여기에 보충해 "그분은 모든 것을 위해 죽음을 맛보셨다"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이것도 잘못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바로 이어지는 10절 말씀이 이 문장을 설명해 주는 것 같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사도는 여기서 '아들들'에 관해 쓰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앞문장에 이탈릭체로 '아들'(son)이란 단어를 넣자고 제한한다. 그러면 앞 문장은 이렇게 된다. "그분은 모든 아들을 위해 죽음을 맛보셨다."

결과적으로 히브리서 2장 9~10절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무제한적인 계획을 내포한다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인용했던 속죄의 제한된 목적을 보여 주는 다른 성경 구절들과 완전히 일치한다. 다시 말해 주님이 '죽음을 맛보신' 것은 온 인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들'을 위해서였다.

이 부분을 마무리하겠다. 하나님의 순전한 주권에서 나오는 것은 지금까지 논증한 제한속죄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제한이란 가치의 효력의 제한이 아니라 계획과 적용의 제한이다. 이제 성령을 살펴보자.

Arthur W. Pink 하나님의 주권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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