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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 45] 만족의 말씀 5 본문

가상 칠언, 그 의미와 적용

[가상칠언 45] 만족의 말씀 5

En Hakkore 2024. 5. 17. 15:31

만족의 말씀(The Contentment)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누가복음 23:46

5. 영원히 안전한 곳이 있다

계속해서 구주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자들에게 말씀하셨고(요 6:37), 잡혀가시던 때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라고 말씀하셨다(요 18:9).

죽음의 시간에 구주께서 아버지의 안전한 곳에 그들을 맡기시는 것을 보면 사랑스럽지 않은가!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의 대표자로 십자가에 달리셨으므로 그의 마지막 행동 또한 대표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주 예수께서 그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셨을 때 그는 또한 우리의 영혼도 그의 영혼과 함께 아버지의 품 안에 드린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믿는 자들을 위해 살고 죽으셨다. 그의 마지막 행위는 자신뿐만 아니라 믿는 자들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는 선택된 백성들의 모든 영혼을 모아서 그들의 정식 채무 변제를 위해 자신의 영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간주해야 한다. 아버지의 손은 영원히 안전한 곳이다. 그 손에 구주는 자기 백성을 맡기셨으며 거기서 그들은 영원히 안전하다.

그리스도께서 선택된 자들을 언급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9). 그러므로 이것이 믿는 자들이 가지는 확신의 근거이다. 이것이 우리 확신의 기초이다.♡

여호와의 손이 방주의 문을 지키셨을 때 아무것도 노아를 해할 수 없었듯이, 아무 것도 전능자의 손에 붙들린 바된 거룩한 이의 영혼을 손댈 수 없다. 누구도 우리를 잡아 끌어내릴 수 없다. 우리는 연약하나 성경의 저자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다고 분명히 선포하고 있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벧전 1:5). 한동안 잘 달리는 것 같아 보이는 프로 선수들도 지쳐서 경기를 포기할 수 있다.

"부흥집회"로 육적인 흥분에 휩싸인 사람들은 "그들 안에 뿌리가 없기 때문에" 잠시 동안만은 참는다. 자신의 의지력이나 결단력에 의존하는 사람들, 마음을 고쳐먹고 좀 더 잘해 보고자 약속하지만, 자주 실패하는 사람들의 최후의 상황은 오히려 처음보다 더 나쁘다.

뜻이야 좋지만 진리를 모르는 권고자들의 "교회에 동참하라"거나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라"는 말에 귀를 기울인 많은 사람들이 종종 진리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나 중생한 모든 영혼은 영원히 아버지의 손에서 안전하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6.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복을 보여 준다

특별히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을 장소나 환경에 상관없이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구주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조롱하는 무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극심한 육신의 고통을 당하고 계셨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교제를 나누고 계셨다!

이것이 우리가 살펴본 성경 본문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진실이다. 외부 환경이나 상황에 관계없이 항상 하나님과 교통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은 믿음으로 된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에 영향받지 않는다. 바깥으로 보이는 당신의 운명이 아무리 냉혹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을 누리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당신의 특권이다.♡

세 명의 히브리인이 극렬한 풀무 가운데서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즐겼듯이,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그랫듯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그랫듯이, 구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러셨듯이, 당신도 당신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릴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이마에는 가시면류관이 둘러 있었지만 그 안쪽에는 아버지의 손이 있었다! 본문은 죽음의 시간에 아버지와 교통하는 복된 진리와 사실을 매우 정확하게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무엇일까?

구약 시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살았던 다윗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시 23:4), 아마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가시를 뽑아내신 지금에 와서 믿는 자들이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죽음이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최악의 두려움"일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저 사랑하는 분 앞에 나아가는 관문일 뿐이다. 죽음 앞에서 우리 영혼의 행동은 삶에서도 그렇듯이 본능적으로 하나님께 향한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만약 우리가 의식이 있다면 이것이 우리의 외침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잠시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품 외에는 안식처가 없다. 그리고 돌아갈 때 우리의 기대와 진정한 갈망은 그와 함께 있는 것이다.

간절한 그리움을 가지고 수없이 하늘을 바라보다가 임종의 시간이 다가오면 구원받은 자들의 영혼은 마치 강이 굽이굽이 돌아 마침내 바다에 뛰어들 듯이 사랑의 품 안에 뛰어든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세상에서 우리 영혼을 채울 수 있고 우리가 돌아갈 때에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다.♡♡

그러나 믿는 자들만이 임종의 시간에 하나님의 손에 영혼을 맡길 자격이 있고 맡길 힘을 얻는다. 믿지 않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상황은 얼마나 슬픈지 모른다. 그들의 영혼 또한 하나님께 가지만 이것은 그들의 불행이지 특권이 아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 10:31). 사랑의 품 안에 안기는 것이 아니라 의의 손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아버지여, 나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7. 진정한 마음의 피난처를 제시한다

구주의 마지막 말씀이 죽어가는 그리스도인의 기도를 표현한다면, 이 말씀은 믿는 사람들의 영혼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 보여준다. 내면의 영은 소중한 보물이며, 우리의 주된 걱정과 큰 염려는 안전한 손에 영이 보호되는 것이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육신은 어찌 되든지 간에 영이 안전한지 믿는 자가 영을 걱정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죽음이 가까운 하나님의 성도는 육신이 어디에 묻힐까, 어떻게 죽게 될까, 육신에 대한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육신은 친구의 손에 맡긴다. 그러나 항상 영혼을 생각하고 있었듯이 죽음이 가까워서도 영혼을 생각하며 마지막 숨을 거둘 때 하나님의 돌보심에 영혼을 맡긴다.♡

"주 예수여, 내 몸을 받으사 나의 흙덩이 육신을 돌보소서"가 아니라 "주 예수여, 내 영을 받아 주소서"이다. 주여, 보석함이 깨어질 때 보석을 보호하소서.

짧은 권면으로 마무리하겠다. 당신은 문제가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다. 삶 속에서 당신 자신을 돌볼 수 없으며, 죽음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삶에는 많은 시행착오와 유혹이 있다. 당신의 영혼은 사방으로 위협받는다. 사면에 위험과 함정이 있다.

이 세상, 육신, 사탄은 연합하여 당신을 대적한다. 그들은 당신의 힘에 비해 너무나 강하다. 여기 어둠 속에 등불이 있다. 폭풍우 속에 안전한 항구가 있다. 사탄의 화전(火戰)에서 보호해 주는 복된 가리개가 있다. 삶의 질풍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피난처 되시는 아버지의 손과 마음의 진정한 피난처가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라.♡♡

Arthur W. Pink 가상칠언 그 의미와 묵상 p175

추신) 되돌아오지 않는 시간 그리고 우리의 삶, 주님오실때까지 늘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으로 승리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