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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 44] 만족의 말씀 4 본문

가상 칠언, 그 의미와 적용

[가상칠언 44] 만족의 말씀 4

En Hakkore 2024. 5. 17. 15:30

만족의 말씀(The Contentment)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누가복음 23:46

4.구주만이 완결무결한 독특함을 보여 준다

주 예수는 다른 사람들처럼 죽지 않으셨다. 그는 생명을 빼앗긴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요 10:17-18).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빼앗기신 게 아니라는 다양한 증거들은 이미 이 책의 서문에 언급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는 아버지 손에 영혼을 맡기셨다는 것이다. 주 예수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실제로 예수님께서 생명을 버리시는 장면을 묘사한 성령은 서로 다른 표현법을 사용하셨다.

이 세 가지 서로 다른 표현법은 우리가 이제 살펴보아야 할 사실들을 분명히 밝히고 있고 성령께서 사용하신 다양한 어휘들은 각각의 복음서에 가장 적합한 것들이다.

마태복음 27장 50절에는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번역은 원본의 의미를 잘 살리지 못한다. 헬라어로는 그가 "자신의 영혼이 떠날 것을 허락하시다"라는 의미이다.♡

이 표현은 주를 "다윗의 자손, 유대인의 왕"으로 나타낸 왕의 복음서인 마태복음에 가장 잘 맞는다. 주님의 행동이 마치 왕이 신하에게 물러날 것을 허락하는 것처럼 권위 있는 자를 상징하기 때문에 이런 단어가 왕의 복음서에 잘 어울린다.

주를 온전히 섬기는 자로 나타낸 마가복음에서 사용된 단어는 우리가 본문으로 사용한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성을 드러낸 누가복음과 같다. "운명하시다" 이것은 죽음을 수동적으로 감당하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적인 영광을 드러낸 복음서 요한복음에서 성령은 단어를 사용하신다.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 19:30).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이 아마 더 정확할 것이다. 여기에서 구주는 인성을 드러낸 복음서처럼 아버지께 자신의 영혼을 "맡기지" 않으신다. 신적인 영광을 지닌 채 죽음을 이기시는 온전한 능력을 가지신 분으로서 자신의 영혼을 "올리신다"!♡

속죄를 위하여 두 가지가 필요했다. 하나는 하나님의 진노한 거룩함과 훼손된 정의를 온전히 충족시켜야 한다. 오직 그만이 우리의 대속물이 되셔서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님은 이것을 해내셨다.

이제 다른 한 가지가 남았다. 바로 구주께서 죽음을 맛보시는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구주에게는 당연히 그 순서가 뒤바뀌었다. 그는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감당하셨고, 그 이후에 죽으셨다.

이제 종국(終局)에 이르렀다. 죽음으로 정복될 수 없는 완전한 주인께서 지칠 줄 모르는 힘으로 크게 외치시고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올리셨다. 여기에 그의 독특함이 드러났다. 어느 누구도 이렇게 하지도, 이렇게 죽지도 못했다.

그의 탄생은 독특했다. 그의 삶도 독특했다. 그의 죽음 역시 독특했다. 목숨을 "버리심으로" 그의 죽음은 다른 어떤 사람들의 죽음과도 구별되었다. 그는 자신 의지로 죽으셨다! 하나님이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그저 인간이었다면 이것은 자살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완전함과 독특함의 증거였다. 그는 생명의 왕처럼 죽으셨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Arthur W. Pink 가상칠언 그 의미와 적용 p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