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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 39] 승리의 말씀 6 본문

가상 칠언, 그 의미와 적용

[가상칠언 39] 승리의 말씀 6

En Hakkore 2024. 5. 16. 13:03

승리의 말씀(The Word of Victory)

5, 죄는 끝났다

믿는 자들의 모든 죄는 구주에게 전가되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씀하신다(사 53:6) .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죄를 지게 하셨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 죄는 없다. 죄는 내 안에 있다.

아담의 본성이 믿는 자 안에 죽을 때까지 혹은 죽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면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죄가 없다. 죄가 내 안에 있는 것과 나에게 있는 것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한데,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재판관이 죄인에게 선고를 내려서 지금 사형 선고 아래 있다고 말한다면, 누구나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유죄 판결이 그들에게 내려져 있다. 그러나 어떤 죄인이 주 예수를 믿어 그를 주님으로 영접한다면 그는 더 이상 "유죄 판결" 아래에 있지 않다.

죄는 더 이상 그에게 없다. 말하자면 죄의 죄책감, 유죄 판결, 형벌은 더 이상 그에게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이다(벧전 2:24). 우리 죄의 죄책감, 유죄 판결, 형벌은 우리의 대속자에게 옮겨졌다.♡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에게로 옮겨졌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에게는 죄가 없다. 이 귀중한 진리가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대속죄일을 통해 훌륭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 날이 되면(그리스도의 모형인) 대제사장 아론이 지난 해에 이스라엘이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이 제사의 방법이 레위기 16장에 묘사되어 있다. 염소 두 마리를 취하여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었다. 여기까지는 그들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 이는 이 세상에 오셔서 죄인들의 구주가 되시려고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나서 염소 중에 하나를 잡아서 죽이고, 그 피를 장막 안에 가지고 들어가서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렸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드려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충족하는 것을 예시한다.

그리고 나서 아론은 회막에서 나와 두 번째 산 염소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안수했다. 이것은 아론을 민족 전체의 대표자로 내세워 동일시 행위를 상징했다. 백성들을 염소와 동일시했다. 염소가 백성들의 죄로 인해 형벌을 받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오늘날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 믿음의 손에 해당한다. 우리 자신을 죽으신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아론은 죄를 고백했다.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레 16:21).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죄는 대속물에게 옮겨졌다. 그리고 마침내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레 16:22).

이스라엘의 죄를 진 염소는 아무도 살지 않는 광야로 끌려나가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염소와 그들의 죄를 더 이상 보지 못했다! 상징적으로 이 염소는 우리의 죄를 지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던 황량한 땅으로 끌려가신 그리스도였고, 그 땅에서 죄는 끝나 버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 죄악의 무덤이다!

                         "다 이루었다."

6. 율법의 요구가 충족되었다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 여호와께서 직접 만드시고 주신 것인데, 어찌 율법이 하찮을 수 있을까! 잘못은 율법이 아니라 타락하고 죄로 가득하여 율법을 지킬 수 없었던 인간에게 있었다.

그러나 그 율법은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서 존중받고 높아지며 율법을 주신 이의 명예가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심이니라"고 성경은 말한다(롬 8:3-4).

성경은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려고"(갈 4:4-5). 그렇다. 구주는 "율법 아래에서." 생각한 말과 행동에서 율법을 준수하기 위해 율법 아래에서 태어나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 5:17). 이것이 주님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구주는 율법의 계율만 지키신 것이 아니었다. 율법의 형벌로 고통당하시고 그 저주를 감당하셨다.

율법을 어긴 우리를 대신하여 그가 의의 선고를 받으셨다. 율법의 형벌을 받고 저주를 감내하셔서 율법의 요구는 온전하게 충족되었고 의는 만족되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 3:13) 또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 또한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롬 6:14).

율법에서 자유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
예수께서 피를 흘리시므로 죄 사함이 있다.
율법으로 저주받고 타락으로 죽었으나,
은혜는 우리 모두를 단번에 구속했다.

                        "다 이루었다."

Arthur W. Pink 가상칠언 그 의미와 묵상 p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