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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 23] 고뇌의 말씀 4 본문

가상 칠언, 그 의미와 적용

[가상칠언 23] 고뇌의 말씀 4

En Hakkore 2024. 5. 14. 11:42

고뇌의 말씀(The Word of Anguish)

2.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과 확고부동한 정의를 나타낸다

갈보리의 비극은 적어도 네 가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십자가에서 인간도 한 일이 있다. 온전하신 분을 붙잡아 "사악한 손"으로 나무에 못 박음으로써 인간의 타락을 드러냈다. 십자가에서 사탄도 한 일이 있다.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여 끝없는 적개심을 드러냈다.

십자가에서 주 예수님도 하신 일이 있다.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죄인을 대신하여 의인이 죽으셨다. 십자가에서 하나님도 하신 일이 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지신 분에게 진노를 쏟아내어 거룩함을 나타내셨고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셨다.

인간의 필력은 흠 없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감히 기록할 능력도 없고 기록할 자격도 없다!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셔서 인간은 그분을 직접 뵈면 살 수가 없다. 너무나 거룩하셔서 천상도 그의 눈에는 정결하지 않다. 너무나 거룩하셔서 천사들조차도 하나님 앞에서는 얼굴을 가린다.

너무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 아브라함은 "티끌과 같은 나"(창 18:27)라고 외쳤다. 너무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온 욥은 "내가 스스로 한하고"(욥 42:6)라고 말했다.

너무나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본 이사야는 외쳤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라고 외쳤다. 다니엘이 현현하신 여호와를 뵈었을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단 10:8)라고 외쳤다.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시기 때문에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합 1:13).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구주를 보지 않으시고 외면하여 버리신 것은 그가 우리의 죄를 지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우리 모두의 악을 담당케 하셨다. 우리의 죄가 대속자인 그에게 있었기 때문에, 우리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대속자에게 쏟아져야 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십자가 주위에 있던 사람은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던 질문이었다. 그때 제자들은 어느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던 질문이었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대답하기 어려웠던 질문이었다. 그러나 주 예수는 자신의 질문에 대답했고 그 대답이 시편 22편에 있다.

시편 22편은 그의 고난을 내다보는 놀라운 예이다. 구주가 십자가에서 네 번째로 하셨던 그 말씀으로 시작된다. 계속해서 같은 어조로서 더 괴로운 흐느낌이 나오다가 3절에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라는 말이 나온다.

그는 옳지 않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한다 - 당신은 거룩하시며 내가 감당해야 할 내 손의 모든 빚을 처리하는 데 공정하십니다. 갚아야 할 내 백성의 죄를 모두 내가 지고 있으므로 당신의 날선 칼로 날 찌르는 것이 옳습니다. 당신은 거룩하시며 공명정대하신 심판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죄의 극악무도함과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정의를 목도한다. 노아 때는 세상이 물로 뒤덮였는가?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과 불로 멸망했는가? 애굽에는 역병이 돌고 바로와 그 군대는 홍해에 수장되었는가?

이 모든 것 속에 죄의 과실과 하나님의 혐오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버림받은 그리스도에게 나타난 죄의 과실과 하나님의 혐오는 훨씬 더 거대하다. 골고다에 가서 그를 보라.

그는 아버지의 진노의 잔을 마시셨고, 정의의 칼에 고난을 받으셨으며, 아버지께 거절당하셨고, 죽기까지 고난을 받으셨다. 그가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하나님은 "아들이라도 용서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자연이 어떻게 지독한 비극을 예감했었는지 보라. 지형 자체가 해골과 같다. 쏟아지는 거대한 진노 아래서 떠는 땅을 보라. 태양이 얼굴을 돌렸을 때 하늘을 보라. 땅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진노를 볼 수 있다.

구약 시대에 떨어졌던 의의 벼락도, 유례없던 대환난의 시기에 배교자들에게 떨어질 진노도, 불못에서 저주받은 자들이 이를 갈고 슬퍼하는 것도 십자가 위에서 아들에게 타올랐던 진노만큼 하나님의 확고부동한 정의와 흠 없는 거룩을 보여 준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끔찍한 심판을 견디어 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거룩하신 분 죄를 미워하심이 무한하신 분, 순전하게 성육신하신 분(요일 3:3)이 우리를 위해 죄를 삼으셨다(고후 5:21).

그래서 그는 진노의 폭풍 앞에 굴복하셨고 아무도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수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혐오가 드러났다. 이것이 갈보리가 보여 주는 진실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라면 그것이 그리스도에게 있을지라도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의는 충족되었고 하나님의 거룩은 입증되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Arthur W. Pink 가상칠언 그 의미와 묵상 p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