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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 22] 고뇌의 말씀 3 본문

가상 칠언, 그 의미와 적용

[가상칠언 22] 고뇌의 말씀 3

En Hakkore 2024. 5. 14. 11:41

고뇌의 말씀(The Word of Anguish)

1. 죄의 참상과 죄 값의 특징을 보여 준다

주 예수는 한낮에 십자가에 달리셨고 모든 것의 진면목이 갈보리에서 드러났다. 거기에서 마침내 본성이 적나라하게 공개되었다. 하나님을 미워하고, 은혜를 배신하며, 빛보다는 어둠을 더 사랑하고, 생명의 왕을 죽이길 기뻐했던 인간 마음의 타락상이 두렵게도 드러났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스도를 끝없이 미워하며, 인간의 마음에 적의를 불어넣어 구주를 배반케 한 사탄의 무시무시한 본질이 발가벗겨졌다. 또한 감히 말로 할 수 없는 거룩함과 확고부동한 정의와 무서운 진노와 견줄 수 없는 은혜의 완벽한 신성(神性)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조악하고 비열하고 불법인 죄 또한 노골적으로 밝혀졌다. 십자가에서 죄가 어디까지 악할 수 있나 폭로되었다. 죄는 맨 처음에 자살로 나타나 아담이 자신의 영적 생명을 파괴했다. 그 다음에는 형제 살해로, 가인이 동생을 살해했다. 죄는 십자가에서 절정에 달해 신을 죽이기까지 했다.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서 죄의 극악함만 보는 것이 아니라 끔찍한 그 대가의 특징도 발견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죽음은 죄의 필연적 결과이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죄가 없었다면 죽음도 없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마지막 숨을 내쉬고 몸이 굳은 후에 만물이 소름 돋게 고요해지는 것인가? 피가 순환을 멈추고 눈의 초점이 흐려질 때 얼굴 위로 드리워지는 종잇장 같은 창백함인가? 물론 그것도 맞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 말 속에는 육체적 기능의 사멸보다는 훨씬 더 애처롭고 비극적인 무언가가 담겨져 있다.

죄의 삯은 영적 사망이다. 죄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드러났다. 타락하기 전에 아담은 조물주와 복된 사귐을 누렸지만,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온 날 저녁 무렵에 주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오셔서 인류의 조상을 부르셨을 때, 죄지은 두 사람은 에덴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버렸다.

늘 빛이신 하나님과 더 이상 친밀한 사귐을 나눌 수도 없었고,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 가인도 마찬가지였다. 주께서 물어보셨을 때, 그는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창 4:14)라고 말했다. 죄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서 쫓겨난다.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위대한 교훈이었다.

여호와의 보좌는 그들 가운데 있었지만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 그는 지성소 안 스랍 사이에 거하셨고, 대제사장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 대제사장도 일 년에 단 하루 피를 가지고 들어갔다.

지성소와 성소 사이를 가르는 휘장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가는 것을 금했으며, 이는 죄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엄숙한 사실을 입증했다. 죄의 대가는 죽음인데, 육체적인 죽음뿐만 아니라 영적인 죽음을 말한다. 단순히 자연적인 죽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형벌의 죽음이다.♡

육체적인 죽음이란 무엇인가? 영과 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진리의 말씀은 쾌락 가운데 살고 있는 자에게 "살았으나 죽었거니와"(딤전 5:6)라고 말한다. 또한 탕자의 비유가 "죽음" 이라는 말의 힘을 얼마나 놀랍게 표현하고 있는지 주목하라.

탕자가 돌아온 후 아버지는 말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 15:24). "타국"에 있던 것이었지 죽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죽었다. 아버지로부터 떨어져나가 분리되었다!

십자가 위에서 주 예수는 자기 백성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대가를 치르고 계셨다. 그분은 죄가 없으셨다. 왜냐하면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벧전 2:24).

우리를 대신하여 불의한 자를 위하여 의로운 자가 고난을 받으셨다. 우리의 평화를 위해 채찍질을 감내하셨다. 우리 죄의 대가는, 우리가 응당 받아야 할 고난과 채찍질은 바로 "죽음"이었다. 그저 육체적인 죽음이 아닌 형벌의 죽음이었다.

이미 말한 대로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됨을 의미했고, 그래서 구주는 외치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끝내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주께 돌아오지 않는 자들을 기다리는 무시무시한 운명은 정해졌다.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9). 모든 선의 원천이시며, 모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악인들에게 "저주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의 존전에서 사라지고 영원히 하나님으로부터 추방당하는 것이 저주받은 자들은 기다린다. 그래서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영원히 거하는 불못이 "둘째 사망"(계 20:14)을 가리킨다.

존재가 소별되지 않은 채 영원히 생명의 주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그 세 시간 동안 겪으셨던 바로 그 분리됨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죄의 대가를 치루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Arthur W. Pink 가상칠언 그 의미와 묵상 p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