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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 18] 사랑의 말씀 4 본문

가상 칠언, 그 의미와 적용

[가상칠언 18] 사랑의 말씀 4

En Hakkore 2024. 5. 14. 11:39

사랑의 말씀(The Word of Affection)

4. 그리스도의 신중함을 보여 준다

마리아를 제자의 손에 맡기신 그리스도의 행동을 통해 그의 부드러운 사랑과 통찰력이 어떻게 표현되었는가는 이미 살펴보았다. 요한이 과부이신 구주의 어머니를 책임지게 된 것은 복된 사명이었고 귀중한 유산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마치 그녀를 '네 자신의 어머니로 모셔라. 나를 향한 너의 사랑을 그녀를 온유하게 돌보면서 나타내라'는 말씀과도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 행동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구약에는 주 예수께서 현명하고 신중하게 행동하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다. 이사야에서 하나님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사 52:13)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맡기시면서 구주는 그녀의 보호자가 될 사람을 선택하는 데 현명한 분별력을 보여 주셨다.

아마도 어머니만큼 주 예수를 잘 이해하는 사람도 없었고, 요한만큼 주님의 사랑을 깊이 이해한 자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을 하나로 묶고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묶는 친밀한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둘은 서로에게 정말 잘 어울릴 것이다.

마리아를 돌보는 데 요한보다 더 적합한 사람도 없었고, 마리아에게는 그보다 더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없었으며, 요한에게는 그녀보다 더 즐거운 교제를 나눌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경이롭고 영광스러운 일이 요한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수년 후에,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묵시 속에서 이 제자에게 자신을 드러내실 것이다. 계시의 시간을 기다리는 30년 동안 구주와 가장 친밀하고 깊은 관계 속에서 살았던 그녀와 계속 함께 있는 것보다 더 훌륭하게 계시를 준비하는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 마리아와 요한이 함께 있는 것이 타당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의 거처를 선택하시고, 동시에 영적 교제의 복을 누렸던 사랑하는 제자에게 인생의 길동무를 주시는 데 신중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라.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마리아를 요한의 집으로 모셔갔기 때문에 요한복음의 다음 장에 기록된 사건이 설명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한복음 20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을 찾아갔다. 요한은 동료를 앞질러 달려가 먼저 무덤에 도착하지만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베드로는 성격대로 무덤 안으로 들어가 잘 개켜진 세마포를 본다. 그리고 나서 요한이 들어가 보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 때까지 그들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약속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한이 믿고 난 후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요 2:10)는 말씀이 있다. 자기 집으로 돌아간 이유는 나와 있지 않지만, 요한복음 19장 27절을 보면 그 이유는 분명해진다.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지금 그는 구주가 죽음에서 일어나신 것을 알고 그녀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급히 "집으로" 돌아간다! 이 기쁜 소식에 어느 누가 그녀보다 더 기쁠 수 있을까! 이것은 성경 속에 조용하게 숨겨진 조화의 또 다른 예이다.

5. 영적 관계 때문에 자연적인 책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한 구주로서 죽어가고 있었다. 이제까지 있었던 일 중에, 또 앞으로 이 세상이 목격할 일 중에 가장 중대하고 가장 거대한 일을 하고 계셨다. 이제 막 하나님의 진노한 정의를 만족시킬 찰나였다.

이 세상이 만들어진 목적, 인류가 창조되어진 목적, 모든 세대가 기다린 목적, 영원한 말씀이 육신이 되신 바로 그 목적을 성취하는 일을 막 하시려던 참이었다. 그렇지만 자연적인 인연의 책임도 간과하지 않으신다. 그는 육신의 어머니였던 그녀를 위해 준비하신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교훈이 있다. 어떤 일이나 의무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자연적인 의무가 면제되거나 육신적으로 우리와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 면제될 수는 없다.♡

선교사로 외국에서 일하면서 아이들을 남겨 두고 가는 사람들이나 아이들을 본국에 보내어 낯선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게 하는 이들은 구주의 발자취를 따르는 게 아니다. 비록 신앙 모임이라 할지라도 모임에 대부분의 시간을 여성들이나 혹은 집에서 가족들에게 의무를 게을리 한 채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사역하러 빈민촌에 가는 여성들은 예수님의 이름과 주장에 비난거리가 될 뿐이다.

그리스도의 일에 앞장선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설교하고 가르치는 데 너무 바빠서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의무를 이행할 시간이 없다면 여기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모범을 보이신 원리를 연구하고 실행할 필요가 있다.♡♡

Arthur W. Pink 가상칠언 그 의미와 묵상 p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