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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 15] 사랑의 말씀 1 본문

가상 칠언, 그 의미와 적용

[가상칠언 15] 사랑의 말씀 1

En Hakkore 2024. 5. 14. 11:37

사랑의 말씀(The Word of Affection)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요한복음 19:25~27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섰는지라"(요 19:25). 아들과 마찬가지로 마리아 역시 슬픔이 낯설지 않았다. 시작부터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눅 1:28~29).

이것은 수많은 어려움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천사 가브리엘은 나타나 놀라운 수태 사실을 알렸다. 그 순간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마리아가 그렇게 신비하고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방법으로 주님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 볼 때, 이것이 크나큰 영광인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당시에는 마리아의 평판에 대한 소소한 위험이나 그녀의 믿음에 대한 간단한 시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에 조용히 복종하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다 -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 이것이 그녀의 반응이었다. 사랑스러운 포기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수태고지를 듣고 "놀랐으며." 이것은 이미 말한대로 수많은 시험과 슬픔의 전조에 불과했다.

여관에 방이 없어서 갓난아이를 구유에 뉘여야 했으니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헤롯이 어린아이의 생명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아들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외국으로 도망가서 수년 동안 애굽에서 머물러야 했을 때 고달팠을 것이다!

아들이 사람들에게 경멸당하고 거부당하는 것을 보면서 영혼이 갈래갈래 찢기는 것 같았을 것이다! 자신의 백성에게 미움을 받고 박해받는 아들을 보면서 그녀의 마음은 슬픔으로 짓눌렸을 것이다!

이제 십자가 앞에 선 그녀의 심정이 어떠할지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그리스도가 슬픔을 아는 남자였다면, 그녀는 슬픔을 아는 여자가 아니었는가?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섰는지라"(요 19:25).

1. 시므온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어린아이 예수의 부모는 예수를 성전으로 데려 가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했다. 그 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던 시므온이 예수를 팔에 안고 하나님을 송축하였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시니 대로 종을 평안이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 2:29-32) 라고 말하고 나서, 그는 마리아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눅 2:34-35).♡

정말 이상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녀의 가장 위대한 특권 때문에 가장 가슴 아픈 일을 당하는 게 정말일까? 시므온이 말했을 때 이는 가당하지도 않아 보였다. 그러나 이 일은 너무나도 정확하고 비극적으로 일어났다! 여기 십자가에서 시므온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섰는지라"(요 19:25).

그리스도가 유아기와 어린 시절을 지나 공생애 사역을 하시는 내내 마리아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그녀는 그늘에서 배경으로 살았다. 그러나 지금 아들의 고난이 극에 달하는 시간에, 세상이 그녀의 배에서 나온 아이를 내칠 때, 그녀는 십자가 곁에 서 있다!

이렇게 완벽한 그림은 아무도 그려낼 수 없다! 마리아는 끔찍한 십자가 가장 가까이에 있다! 믿음과 소망이 사라진 채, 뜻하지 않은 상황에 당황하고 온 몸이 얼어붙었지만, 죽어가는 그에게 사랑의 금사슬로 엮이어 거기 서 있다!

그 어머니의 마음속 생각과 감정을 느끼고 읽어보라. 그녀의 마음을 찌르는 것은 분명 날선 칼이다! 한 인간의 탄생에 그런 축복이 없었고, 비인간적인 죽음에 그런 슬픔이 없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어머니의 마음을 본다. 그녀는 죽어가는 사람의 어머니이다.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받는 자가 그녀의 자식이다. 가시면류관이 들린 이마는 그녀가 맨 처음 입 맞추었던 이마였다. 처음 걸음마를 땔 때 그녀가 보호해 주었던 손과 발이었다. 그 어느 어머니도 그녀만큼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제자들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도망갔고, 친구들은 그를 저버렸으며, 백성들은 그를 경멸했지만, 어머니는 십자가 발밑에 서 있다. 누가 그 어머니의 마음을 짐작하거나 헤아릴 수 있을까.

칼이 서서히 마리아의 영혼을 관통하고 있을 슬픔과 고통의 시간을 누가 가늠할 수 있을까! 신경질적이거나 발악하는 슬픔은 없었다. 여인의 약함을 보이지도 않았고, 주체할 수 없는 고통을 미친듯이 울부짖지도 않았으며, 정신을 잃지도 않았다.

사복음서 어디에도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녀는 분명히 굳게 잠긴 침묵 속에서 아파했다. 그러나 그녀의 슬픔은 사실이었고 극심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잔인한 가시에 찔린 이마를 보았지만, 부드러운 손으로 닦아 줄 수 없었다.

못 박힌 손과 발이 마비되고 멍드는 것을 보았지만, 손으로 따뜻하게 안아 줄 수 없었다. 아들의 목마름을 느꼈지만, 갈증을 풀어 줄 수 없었다. 영혼의 적막한 심연 속에서 그녀는 괴로웠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섰는지라"(요 19:25).

군중들은 조롱하고, 강도들은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대제사장들은 비웃고, 군병들은 냉담하며 무정하고, 구주는 피를 흘리고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끔찍한 조롱을 보고 있다. 이런 장면을 보고 그녀가 기절했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돌아가 버렸다고 해도 공감할 수 있다. 그런 광경을 보고 뛰쳐나갔다고 해도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에 있다. 두려움에 위축되지도 않았고, 기절하지도 않았으며, 슬픔에 겨워 자리에 주저앉지도 않았다. 그녀는 서 있다.

그녀의 행동이나 태도는 독특하다. 인류의 전 역사 속에서 이와 유사한 경우는 없다. 초월적인 용기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서 있었다. 놀라운 강인함이다. 슬픔을 억누르고 말없이 서 있었다. 마지막 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주님을 향한 경외 때문이 아니었을까?♡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한복음 19:26~27

Arthur W. Pink  가상칠언 그 의미와 묵상 p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