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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 17] 사랑의 말씀 3 본문

가상 칠언, 그 의미와 적용

[가상칠언 17] 사랑의 말씀 3

En Hakkore 2024. 5. 14. 11:39

사랑의 말씀(The Word of Affection)

3. 요한이 구주 곁으로 되돌아 왔다

하나님의 손에 고난을 받으셨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리스도께서 받으셔야 했던 잔 중에 가장 쓴 부분이 아마도 제자들의 배신이었을 것이다. 자기 백성, 유대인들이 그를 경멸하고 거절했다는 것도 정말 끔찍하고 마음 아팠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주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열한 제자가 위기를 맞으신 주를 버렸다는 것은 훨씬 더 끔찍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믿음과 사랑이라면 어떤 일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마 26:56)"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

그들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단 한 시간도 주님과 함께 "깨어 있지" 못했던 것도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주님이 체포당하실 때 도망간 것은 거의 납득할 수 없다. 그러나 거의라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쓰라린 경험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거짓된지,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허약한지, 시험과 시련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아주 사소한 시험도 우리를 넘어뜨리기에 충분하다.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거둔다면 우리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앞으로 비겁하게 되리라고 진지하게 경고하셨다.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마 26:31).

베드로만이 아니라 모든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겠다고 단언했다.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마 26:35). 그렇지만 주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그들 모두는 비열하게 예수님을 버렸다.

이 또한 주님의 영광을 나타냈다! 그들이 비겁하게 도망간 것은 예수님의 적들에게 예수님을 경멸하고 조롱할 수 있는 빌미를 주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요 18:19)라는 말씀이 있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 추측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분명히 가야바는 제자들의 수가 몇이며,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는지 심문했을 것이다. 왜 그들은 주인을 버리고 도망했으며, 어려움이 닥쳤을 때 예수님만 내버려주었는지도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주께서 이 질문에 대해 답하지 않으신 것을 주목하라. 제자들은 자신을 버렸지만, 적들 앞에서 그들을 비난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예수님께 "감정이 상해서" 그를 버렸다.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마 26:31).

이 말을 헬라어로 번역하면 "정나미가 떨어지다"가 적절하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는 게 부끄러웠다. 주님과 함께 남아 있으면 더 이상 안전하지 못했다. 주님이 스스로 자신을 내어 주셨을 때, 그들은 스스로 살 방도를 찾고, 주님을 집어삼킨 눈앞의 폭풍을 피할 피난처를 찾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여겼다. 이것이 인간의 눈으로 본 것이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이 그리스도를 버린 것은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멈추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버리는 것이 그들에게는 익숙한 일이 아니었다. 이후에 그들은 결코 주를 버리지 않았다.

만약 하늘로부터 능력과 열정과 사랑을 받았다면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었다면 그리스도가 어떻게 그 어려움과 고난을 감당하실 수 있었을까? 어떻게 혼자 그 길을 걸어가실 수 있었을까? 만약 제자들이 신실하게 예수님과 함께 동행했다면 그의 슬픔이 어떻게 순전할 수 있었을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는 어떤 피조물로부터도 최소한의 위로와 위안을 얻을 수 없다. 홀로 남아 하나님의 진노와 사람의 적의와 씨름하기 위해 주님은 제자들에서 자신의 강력한 힘을 잠시 거두신다. 그래서 그들은 머리 깎인 시몬처럼 여느 사람들과 같이 연약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말한다. 만약 그 능력이 사라지면 우리의 목적과 해결책은 태양 앞에서 눈 녹듯이 유혹 앞에서 쓰러질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의 비겁함과 배신은 잠시 잠깐이었다는 점을 명심하라.

후에 그들은 갈릴리의 예수님이 명하시던 산에서 승리하시기 전에 열한 제자 중에 하나가 주님을 찾았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그는 예수께서 수치스러운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주님을 찾았다. 그게 누구였을까? 제자 중 누가 주님에 대한 사랑이 더 뜨거웠는가 증명할 것인가?

비록 성경은 그가 누구인지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이름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본문의 말씀이 십자가 발밑에 서 있는 자가 요한임을 알려 준다는 사실이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조용하지만 충분한 증거이다.

성경의 근거가 초인간적임을 입증하는 말씀이 의도하지 않아도 만들어내는 일치이다. 열한 제자 중에 어느 누가 십자가 주위에 있었다는 암시는 없지만, 사려 깊은 독자라면 "예수가 사랑했던 제자"가 그 자리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할 것이다. 거기에 그가 있었다.

요한은 구주에게 돌아왔고, 거기서 주님으로부터 복된 사명을 받는다. 성경의 조용한 조화는 정말 꾸밈없고 완벽하다!

구주에게서 멀리 떨어져 방황하는 자, 더 이상 주님과 사랑의 대화를 즐길 수 없는 자, 한 마디로 타락한 자가 이 말씀을 읽고 있는가? 아마도 시험 때문에 주를 부인했을 것이다. 시련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주님의 유익보다는 자신의 유익을 더 추구했을 것이다.

주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던 것을 다 잊어버렸을 것이다. 지금 죄를 깨닫게 하는 화살이 당신의 양심의 과녁에 꽂히길 바란다. 하나님의 은혜로 당신의 마음이 녹아지길 바란다. 하나님의 능력이 당신을 만족과 평화를 맛볼 수 있는 유일한 그리스도께 인도하길 바란다.♡

당신을 격려하는 것이 있다. 그리스도는 되돌아온 요한을 나무라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방황을 멈추고 당장 그리스도께 돌아오라. 그가 당신을 환대와 격려의 말씀으로 받아 주실 것이다. 그가 당신에게 영광스러운 사명을 주실 것이다!

Arthur W. Pink 가상칠언 그 의미와 묵상 p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