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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 13] 구원의 말씀 7 본문

가상 칠언, 그 의미와 적용

[가상칠언 13] 구원의 말씀 7

En Hakkore 2024. 5. 14. 11:36

구원의 말씀(The Word of Salvation)

5. 그리스도는 구원자이시다

십자가들은 겨우 몇 발자국 떨어져 있었고 구주는 회개하는 강도의 울부짖음을 곧바로 들으셨다.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는가? "넌 이렇게 당할 만하다. 사악한 강도라서 죽어 마땅해"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었다. 아니면 "너무 늦었어. 날 좀 더 일찍 찾아 왔어야지"라고 대답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내게로 오는 자는 거절하지 않겠다" 라고 약속하셨다. 이것이 여기에서 입증되었다.♡ 주 예수께서는 군중들이 던지는 비난 소리를 신경 쓰지 않으셨다.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는 대제사장의 모욕에도 반응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믿고 참회하는 자의 기도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셨다.

어둠의 세력과 씨름하면서 자기 백성들의 무거운 죄짐을 감당하시던 시간이었다. 그러니 개인의 요청쯤이야 잠시 사양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아오는 죄인을 그리스도께서 거절하시는 순간은 있을 수 없다. 주님은 지체하지 않으시고 강도에게 평안을 약속하신다.

회개하고 믿은 강도의 구원을 통해 기꺼이 죄인을 용서하시는 주님뿐만 아니라 구원의 능력이 충만하신 주님을 볼 수 있다. 주 예수께서는 연약한 구주가 아니시다. 그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하실 수 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만큼 극명하게 보여진 적이 없었다. 십자가에서는 구원자가 "연약"한 때였다(고후 13:4). 강도가 "주여, 나를 생각하옵소서"라고 외칠 때, 구주는 저주받은 나무 위에서 고난당하고 계셨다.

그러나 심지어 그럴때라도, 그런 곳에서도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시고, 천국의 문을 여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셨다. 그러므로 구주의 무한하신 능력은 의심이나 문제가 될 게 없다. 죽음의 문턱에 계셨을 때도 구원하실 수 있었다면 무덤에서 일어나 승리하시고 다시는 죽지 않으실 지금은 더 말할 여지도 없다. 그리스도는 이 강도를 구원하시면서 가장 힘든 시간에도 능력을 보여 주셨다.

죽어가는 강도의 구원은 주님께서 그에게 오는 자는 누구든지 기꺼이 구원하시며, 또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회개하고 믿은 이 강도를 그리스도께서 받아 주셨다면, 주께서 받아 주지 않을까 봐 절망할 이유는 아무에게도 없다. 그저 그리스도께 가기만 하면 된다.♡

이 죽어가는 강도가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 안에 있었다면 하나님의 은혜의 초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인자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눅 19:10) 이 땅에 오셨고, 아무도 그의 눈을 피해 숨을 수 없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다(롬 1:16). 하나님의 은혜를 제한하지 말라. 구주는 바로 죄인 중에 괴수를 위해 오셨다(딤전 1:15). 오직 믿기만 하면 된다. 죽어가면서도 아직 죄 중에 있는 자들에게도 소망은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임종의 침상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거의 없을 거라고 믿고, 죽기 직전까지 구원을 미루는 사람이 제일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침대에 누워서 죽을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누워 볼 겨를도 없이 갑자기 죽는다. 그러나 임종의 침상에 있는 자일지라도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 안에 있다.

어떤 청교도는 이렇게 말했다. "성경에는 아무도 절망할 필요가 없는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단 한번의 사건이며,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스도는 구원자이시다. 그는 이 세상에 죄인들을 구원하려고 오셨고, 이 세상을 떠나면서 구원하신 강도, 구속하시는 피의 첫 번째 열매와 함께 낙원으로 가셨다!

6. 구원받은 자의 죽음에서의 운명을 말한다

앤더슨 베리(Anderson-Berry) 박사의 탁월한 저서 '그리스도의 가상칠언'(The Seven Sayings of Christ on the Cross)을 보면, 흠정역(King James Version)에서 "오늘"이라는 말의 위치가 틀렸으며, 강도의 요청과 그리스도의 응답으로 이루어진 대화에서 그리스도의 응답은 어순이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스도의 응답 형태는 분명히 강도의 요청순서와 부합하게 되어 있다. 두 대화를 대구를 이루게 정렬하면 확실히 나타난다.

가로되                         And he said unto Jesus
예수께서 이르시되       And Jesus said unto him

예수여                         Lord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Verily I say unto thee

나를 생각하소서          Remember me
네가 나와 함께 있으리라  Shalt thou be with me

임하실 때에                 When thou comest
오늘                            Today

당신의 나라에              Into thy kingdom
낙원에                         In paradise

이렇게 배열해 보면 올바른 강조점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이 강조된 말이다. 강도의 요청에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의 응답은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인간의 기대를 능가하는지를 보여 주는 놀라운 예이다.

강도는 주님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생각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그리스도는 그 날이 지나가기 전에 구원자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그에게 확실히 말씀하셨다. 강도는 이 땅의 나라에서 생각해 달라고 간청했지만, 그리스도는 낙원을 보장하셨다. 강도는 그저 "생각하소서"라고 요청했지만, 구세주는 "함께" 있을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간구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풍성히 넘치게 행하신다.♡

그리스도의 대답은 육체가 죽고 나서 영혼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믿는 자는 죽음과 부활 사이의 중간 기간 동안 주님과 함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형식적인 말 같지만 확실한 단어를 맨 앞에 붙이셔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라고 약속하셨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에 힘이 되었던 것은 바로 죽어서 그리스도에게 간다는 이 소망이었다. 그래서 그는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 7:59)라고 부르짖었다. 사도 바울이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빌 1:23) 라고 말했던 것도 바로 이 복된 소망때문이었다. 믿는 자들은 모두 죽고 나서 그저 무덤에 의식 없이 누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된다. 이것은 "믿는 자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믿지 않는 영혼들은 낙원에 가는 대신에 주님께서 누가복음 16장에 분명히 가르치신 대로 고난을 받는 곳으로 가게 된다. 만약 지금 죽는다면 당신의 영혼은 어디에 가겠는가? 하나님의 성도들에게서 이 복된 소망을 숨기려고 사탄이 얼마나 고군분투하는지 모른다!

죽음과 부활 사이에 믿는 자들은 의식 없는 상태라는 우울하기 짝이 없는 잠든 영혼의 교리를 퍼뜨리고 다니는가 하면, 끔찍한 연옥을 고안해 내서 믿는 자들이 죽은 후에 정화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불을 통과한다는 생각으로 겁을 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강도에게 하신 말씀은 너무나 완벽해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모든 기만들을 다 물리치고도 남는다. 강도는 십자가에서 곧바로 낙원으로 갔다! 죄인은 믿는 순간에 바로 "빛 가운데서 성도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골 1:12) 된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우리의 자격은 물론 그리스도 앞에 우리가 합당하게 되는 것은 오로지 그의 흘리신 피에 근거한다.♡

Arthur W. Pink 가상칠언 그 의미와 묵상 p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