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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칠언, 그 의미와 적용

[가상칠언 1] 서문 1

En Hakkore 2024. 5. 13. 11:15

미세먼지가 심한 봄날, '하나님의 주권' 연재를 마무리 할 즈음, 이미 시작된 사순절 기간 중에 기도하면서 '가상칠언 그 의미와 적용'(Arthur W. Pink) 1개월 분량을 묵상하며 나눔하고자 합니다.

존 맥아더(John Macarthur) 목사님의 추천의 글처럼, 용서, 구원, 사랑, 고뇌, 고난, 승리, 만족에 대한 일곱 개 주제의 통찰력 있는 교훈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암흑의 시간에 말씀하시고 이루신 일, 특히 죄인들을 위해 얻으신 영원한 승리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서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진리의 말씀을 연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히 중요한 주제이다. 그의 죽음이 믿는 자들의 모든 것, 이 세상의 삶과 영원한 삶 모두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그 죽음의 특징을 네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자연스럽고, 보통과 달랐으며, 기이했고, 초자연적이었다. 각각의 의미와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그리스도의 죽음은 자연스러웠다.

실제로 죽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죽었다는 말은 단순하고 일상적이어서 너무나 익숙하긴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말하는 죽음은 영적으로 볼 때 놀랄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악한 무리들의 손에 이끌리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분은 다름 아닌 임마누엘이셨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 다름 아닌 여호와의 "동역자"이셨다. 저주받은 나무에 흘려진 피가 하나님의 것이었다 -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행 20:28).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고후 5:19)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떻게 여호와의 "동역자"가 고난을 당하실 수 있었을까? 어떻게 영원하신 분이 죽을 수 있으셨을까? 태초부터 말씀이셨던 그분,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그분, 하나님이셨던 그분이 "육신이 되셨다."

하나님이셨던 분이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그러므로 영광의 주님은 성육신하셨기 때문에 죽음을 겪으실 수 있었고, 죽음 자체를 "맛보셨다."

우리는 예수님이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고 하신 말씀에서 그의 죽음이 얼마나 자연스러웠는지 깨닫게 되고, 예수께서 무덤에서 3일간이나 누워 계심으로 죽음의 실체가 훨씬 더 명백해진 것을 보게 된다.

둘째, 그리스도의 죽음은 부자연스러웠다.

보통과 달랐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죽음을 겪을 수 있으셨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음이 예수님의 목숨을 빼앗았다고 추론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그 정반대가 진리이다.

죽음은 죄의 삯이지만, 그는 죄가 없으셨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에 마리아는 들었다.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5). 주 예수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뿌리를 둔 관계를 통하지 않고 이 세상에 오셨을 뿐만 아니라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벧전 2:22), "죄가" 없으시며(요일 3:5),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고후 5:21)였다.♡

인격과 행위에서 "흠 없고 점 없는"(벧전 1:19) 거룩한 하나님이셨다. "그런 분이셨기에 죽음은 그의 목숨을 앗아가지 못했다. 빌라도조차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성자의 죽음은 보통과 달랐다.

셋째, 그리스도의 죽음은 기이했다.

그 죽음은 계획되어 있었고 사전에 그에게 예정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는 창세 이전에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셨다(계 13:8). 아담이 창조되기 이전의 타락은 예상되었다.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기 이전에 하나님은 죄로부터의 구원을 계획하고 계셨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죄인들을 위한 구주, 불의한 자들을 대신하여 의로운 자가 고난을 받아야 하는 구주, 우리를 살리기 위해 죽어야 하는 구주가 있어야 한다고 미리 결정을 내리셨다.

그리고 "죄 값을 치를 만큼 선한 사람이 없기에" 아버지의 유일한 아들이 자신을 죄의 제물로 드리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기이한 특징은 "십자가의 뒷받침"이라는 말로 잘 표현되어 왔다. 하나님께서 공정하게 "전에 지은 죄를 간과"(롬 3:25)하신 것은 바로 앞으로 있을 이 죽음을 예상하셨기 때문이다.

창세 이전에 죽임을 당한 어린양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았다면 구약 시대의 모든 죄인들은 죄를 짓는 그 순간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넷째, 그리스도의 죽음은 초자연적이었다.

다른 모든 죽음과는 달랐다는 의미이다. 그는 모든 것에서 뛰어나시다. 그의 탄생은 다른 모든 출생과 달랐다. 그의 삶은 다른 모든 인생과 달랐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다른 모든 죽음과 달랐다. 이것은 죽음에 관하여 그분 스스로 하신 말씀에 확실하게 암시되어 있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다시 얻을...권세도 있으니"(요 10:17-18).♡

예수님의 죽음을 묘사한 복음서의 이야기들을 주의 깊게 연구해 보면 이 주장에  대한 일곱 가지 증거들과 근거들을 찾아볼 수 있다.

1. 우리 주님이 "목숨을 버리셨다"는 것과 적들의 손에서 무력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예수께서 잡히시던 기록인 요한복음 18장에 명확히 나와 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보낸 하속들과 군대가 가룟 유다의 인도를 받아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찾았다. 예수님은 나아가 그들을 만나시고 물었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나사렛 예수"라고 대답하자, 주님은 감히 입에 올릴 수 없는 하나님의 호칭을 언급하셨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구약의 모세에게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자신을 드러내셨단 바로 그 말씀이었다 - "내로라(스스로 있는 자니라: I am)" 그 결과는 놀라웠다.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군대는 두려움에 떨었다.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었다.

한순간 하나님의 위엄을 깨닫고서 압도당하였다. 복된 구주께서 하려고만 하셨다면 자신을 잡으러 왔다가 땅바닥에 엎드러진 자들을 내버려둔 채 조용히 걸어나오시는 것이 얼마나 간단한 일이었을까! 그러나 그는 그들의 손에 자신을 넘기시고 도살장으로 가는 양처럼(끌려가신 게 아니라) 따라가셨다.

2. 이제 성경에서 가장 엄숙한 절인 마태복음 27장 46절로 가 보자.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여기에서 유심히 보아야 할 말은 구주가 '크게 소리 질러' 외치셨다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확실히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같은 장에서 이 말이 네 번이나 더 반복되었다는 것을 주목해 보면 그 이유는 더욱 분명해진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마 27:50).

그렇다면 이 말이 내포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위 단락에서 말했던 것을 더 확증해 주고 있지는 않는가? 정신이 혼미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지 않는가? 여전히 자신을 추수르면서 죽음에 정복되는 대신에 스스로 목숨을 내어놓으신 것을 넌지시 보여 주지는 않는가? 하나님께서 "돕는 힘을 능력 있는 자에게 더하여"(시 89:19) 주신 것을 보여 주지는 않는가?

Arthur W. Pink 가상칠언 그 의미와 적용 p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