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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 5] 용서의 말씀 3 본문

가상 칠언, 그 의미와 적용

[가상칠언 5] 용서의 말씀 3

En Hakkore 2024. 5. 13. 11:35

4. 인간의 마음이 눈멀었다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적들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빌라도가 들어 주었던 자신들의 사악한 요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범죄의 현장에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는 주님의 기도는 무슨 뜻이었을까?

자신들의 죄가 얼마나 극악무도한 것인지를 몰랐다는 뜻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못 박은 자가 바로 영광의 주님이셨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함"이 아니라 "자기의 하는 것"에 강조점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알았어야 했다. 그들이 눈이 멀어 보지 못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예수께서 성취하셨던 구약의 예언들은 그가 거룩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에 충분히 분명했다. 그의 가르침은 독특했다.

그를 정면으로 비난하던 자들도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요 7:46) 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완벽한 삶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전에는 결코 없었던 삶을 사람들 앞에서 사셨다.

자신의 만족을 구하지 않으셨다. 선한 일을 위해 동분서주하셨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의 손에 자신을 넘기셨다. 개인의 유익을 추구하지 않으셨다. 시종일관 자기 희생의 삶을 사셨다.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셨다. 하늘의 인정을 받은 삶이었다.♡

아버지께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말씀으로 입증하셨다. 그들의 무지를 변명할 거리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그들의 마음이 눈멀었다는 것을 입증할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하여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에게 대항하는 적의임을 단 한번에 영원히 완벽하게 증명해 주었다.

이 끔찍한 비극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못 본척 하고는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등한히 하고 그 자비의 손을 뿌리쳐 버리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알지 못한다.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을 거부하는 행위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지 알지 못한다. "이 사람이 날 다스리게 하진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알지 못한다.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 중대한 문제를 냉담한 무관심으로 대한다.

구약에서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어찌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관련하여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를 거부하고 경멸하든지 아니면 영혼의 구원자이며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든지,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것이 당신에게 하찮은 문제나 사소한 문제로 보인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수년 동안 당신은 주의 영의 호소를 거부해 왔다. 수년 동안 정말 중요한 문제를 처박아 두었다. 수년 동안 그에 대한 마음을 강팍하게 하고 그의 호소에 귀를 막았으며 탁월한 그의 아름다움에 눈감아 버렸다.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을 당신은 알지 못한다! 자신이 제정신이 아닌 것을 보지 못한다. 자신의 끔찍한 죄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구제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려고만 하면 지금 구원받을 수 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지금 구주 앞으로 나와 구약의 어떤 사람처럼 말하라. "주여 내 눈을 열어 주소서."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5.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을 아름답게 실천하는 모범이 되셨다

산상수훈에서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고 가르치셨다. 누구보다도 그리스도는 자신의 가르침을 몸소 행하셨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왔다.

그는 진리를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진리이신 그 자신이 육신이 되신 것이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는 산에서의 가르침을 십자가 위에서 완벽하게 예증하셨다. 그는 모든 것에서 모범을 남기셨다.♡

그리스도께서 개인적으로 적들을 용서하지 않으셨다는 점을 무목하라. 그래서 마태복음 5장 44절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원수를 용서하라고 권고하지 않으시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권고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하지 말아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더 많은 가르침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성경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항상 용서해야 한다고 가르치는가?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대답한다. 성경은 말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내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눅 17:3-4).

여기에서 우리는 용서를 말하기 전에 잘못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분명히 본다.♡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이 먼저 "회개"해야 한다. 말하자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판단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슬픔을 증거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잘못한 사람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나는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말을 오해하지는 말라.

나에게 잘못한 사람이 회개하지는 않는다 해도 나는 그에게 나쁜 감정을 품지 않을 것이다. 마음속에 증오나 적개심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을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것처럼 대해서도 안 된다. 그러면 그 잘못을 묵과하여 의의 명령을 저버리게 될 것이다. 의의 명령은 믿는 자가 항상 준수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회개가 없는데도 항상 용서해 주실까? 아니다. 성경은 선포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어떤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고 뉘우치지 않으면 나는 그를 용서할 수도 없고 그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것처럼 대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하여 마음에 앙심을 품어서는 안될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온전한 모범의 가치이다. 용서할 수 없다 해도 하나님께 그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Arthur W. Pink 가상칠언 그 의미와 묵상 p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