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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연합과 친교 97] 마지막회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연합과 친교 (Spiritual Union and Communio

[영적인 연합과 친교 97] 마지막회

En Hakkore 2024. 5. 13. 11:14

4(장문)

그리스도는 모든 일에 있어서 선구자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범도 되신다. 종은 그의 주인보다 높이 있지 못하며 오직 주인의 발자취를 따라야 할 뿐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생애를 자세히 연구해 보면 그의 영광에 관한 4가지 뚜렷한 단계가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예정적 목적 안에는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자 인간으로서의 제 1의 근본적인 영광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섭리의 거울 안에서 자기 아들로 말미암아 연합을 이룬 인간을 보셨으므로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사 42:1)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으며 이것은 영원 전부터 예정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는 일이 시간 속에서 일어나야 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자 인간으로서 계약적 본체를 가지고 계셨으며 그 본체는 천사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영광을 입으셨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5)라고 기도하셨을 때, 주님은 바로 이것을 언급하고 계셨다.

그 '영광'은 그의 중보적 영광인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삼위의 제 2위로서 자기의 본질적인 영광을 결코 버리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할 수 없으시다면 그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최초의, 그리고 본래의 상태는 하늘의 영광의 상태이다.

교회도 이와 같은데 왜냐하면 모든 점에서 교회와 그리스도는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시되"(엡 1:3).

이것 또한 '창세 전'이었다. 왜냐하면 다음 구절이 계속하여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라고 기록되어 있음도 본다.

둘째로, 우리를 위해 부요하신 자가 가난하게 되셨을 때, 그리스도는 낮아지신 상태에 있었다.♡

천사들의 주님께서 스스로 종의 모습을 취하셨다. 그의 영광이 이렇게 가리워지고, 그는 아주 낮아지셨기 때문에 그가 이 세상에 계실 때에는 '머리를 누일 곳도 없었다' 그가 들어오신 곳의 상태가 이러하였으므로 그는 '슬픔과 비애를 잘 아는 사람'이 되셨다.

전체적으로는 그의 교회도 그러하고 개인적으로는 그의 지체들도 그러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행 14:23). 우리도 이 땅에서 슬픔과 비탄을 겪어야 하며 머리되신 이가 겪으신 슬픔을 우리의 몫만큼 받아야 한다.

세째로,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의 상태에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실 때에 이 상태에 들어가셨고 곧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실"(딤전 3:16)때 그에게는 "영광과 존귀로" 관이 씌여졌으며 하나님의 피조물 위에 세우심을 받으셨다(히 2:7).

그러나 그 구절은 계속하여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할 것을 보지 못하고"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리스도께서는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신다"(히 10:13). 더우기 그리스도께서는 아직 자기의 "충만"(엡 1:23)인 완전하고 영화된 교회를 가지고 계시지 않는다.

이에 따라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 우리는 '훨씬 좋으신'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위하여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영화로운 몸이 없으며 그 완전한 상태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네번째로, 그리스도의 궁극적이고 영원한 영광이 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교회를 떠나서는 그 상태에로 들어가지 않으실 것이다. 이 둘의 최종적인 영화는 동시에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의 신부를 위해서는 그 어느 것도 지나치거나 비싸다고 생각지 않으시며 그녀로 합당한 신부가 되게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과 천사의 생각을 초월한 거룩한 행복과 명예와 영광 상태로 그녀를 높이기 위하여 모든 신령한 복을 그녀에게 주시며 그녀로 하여금 부요하게 하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자신의 마음 또한 만족시킬뿐만 아니라 자기의 지혜와 은혜의 풍요함을 모든 영혼에게 영원토록 나타내고 그녀를 향한 자기 사랑의 높이와 깊이, 넓이와 길이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러면 영화된 머리는 자기의 몸 안에서 영화되실 것이며 모든 믿는 이의 찬미를 받으실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의 본래의 초창조적 영광은 완전히 명백하게 나타날 것이다. 하늘에 있는 의로운 자들의 장차 영광은, 하나님이자 인간이신 중보자를 통하여 복을 나누어 주시므로, 그 결과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엡 3:19) 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사도들의 기도들은 성령에 의해 기록된 것이므로, 우리들은 그들의 간구를 마치 하나님의 약속처럼, 즉 지금은 우리가 어느 정도는 안다고 할지라도 미래에나 완전히 실행이 될 하나님의 약속으로서 여겨야 한다는 것은 거의 지적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표현이 될 것이다. 즉 영원 상태 안에서 택함받은 자들은 거룩한 삼위와 친교를 나눌 수 있게 되어서 그들은 생명과 빛과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대한 모든 지식은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며 또한 성령에 의해서이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0,11).

성령은 지금 지상에서는 신자들의 마음 속에 거하시며 하늘에서는 영원토록 그들 안에 거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영광의 영"(벧전 4:14)으로 불리워지시는데 그것은 무한한 미래에 성령과 우리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내는 명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성 안에 계신 각 위께서는 교회의 영원한 행복과 관계되는 독특한 부분과 자리를 차지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즉 그의 계시된 완전함)을 볼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빛을 발하시는 매개체가 되실 것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은 바로 성령에 의해서이다. 그것이 바로 은혜의 정점이요 우리의 구원의 극치요 즐거운 특권과 기쁨의 절정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 영혼에게 무엇을 의미하게 될 것인지에 관하여 우리는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 유한한 자는 무한하신 자를 전혀 포함하거나 둘러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자는 우리의 전 존재, 즉 영과 혼과 몸을 완전히 소유하시고 풍부히 만족시키실 것이다.

유명한 청교도 T. 굳윈은 다음의 이야기 속에서 이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즉 "뜨거운 용광로의 불 속에 작은 쇳조각이 던져져서 그것이 녹지 않고 완전히 불로 화하지 않았을 때 당신은 그것을 분간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온통 불같이 보일 것이다. 이와 같이 당신 자신이 충만해지도록 하라.♡

영원히 거룩하신 삼위께서는 하늘에 있는 성도들에게 가장 소중하신 분이 된다. 성도들의 머리 속에는 삼위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며 성도들 위에, 성도들 안에, 그리고 성도들을 통하여 빛나는 동일하신 삼위의 영광에 대한 생각과 그 즐거움으로 가득하여져서 자기 자신이나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영광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교회를 기뻐하실 것이며 교회는 영원히 그를 기뻐할 것이다. 상호간의 교제와 서로간의 억제되지 않은 마음의 열림이 있을 것이다. 친교를 나눌 때에는 양편에서 교제가 이루어진다. 한편이 다른 편에게 친절을 베풀면, 그것을 받은 자는 그 받은 은혜에 따른 감사를 표함으로써 보답을 한다. 이 양편으로부터의 교제는 사랑과 연합에서 기인된다.

그러므로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빌 4:15)고 기록하고 있다. 바울과 빌립보의 성도들은 마음으로 연합되어 있었고 복음에서 함께 영적 교제를 나누었다(1:5).♡

그에 대한 사랑에서 그들은 잠시이긴 했지만 교제를 나누었으며 그들은 적극적으로 주는 자가 되었고 바울은 수동적으로 받는 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 사도는 그들의 선행을 인정해 주고 그에 대해 감사함으로써 교제를 나누었다. 이것은 하늘에서의 그리스도와의 친교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관한 관념을 형성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포도나무가 가지에게 수액을 전달하듯이, 가지는 나무잎을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음으로써 그에 응답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계속하여 주는 자가 되실 것이며 우리들은 받은 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친교는 우리의 사랑이 넘쳐날 때 이루어질 것이며 그 보답으로 우리는 찬미와 감사와 찬양과 예배를 드릴 것이다.♡♡

찬란한 영광 속에 주님과 나
무궁한 행복을 누리게 되리
주와 함께 영원히 있는 것, 나의 행복
나와 함께 있는 것, 주의 무한한 기쁨

Arthur W. Pink 영적인 연합과 친교 p285

후기1) 할렐루야! 그동안 가장 심오하고 난해하다는 '영적 연합과 친교'에 대하여 함께 3개월동안 나눔할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 한 분 하나님 안에서의 3위의 연합,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 그리고 신비스러운 몸 안에서의 신자들의 연합에 대해 구체적으로 공부하였습니다. 오늘날 불완전한 지상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이 참된 의미를 어떻게 적용할지 나 스스로 돌아보며 부끄럽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져가기를 기도합니다.

후기2)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책을 어렵게 구해준 가족에게도♡ 깨알같이 작은 본문의 글씨체를 들여다보며 폰에 옮기는 과정에서 숱한 오타가 발견되어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때그때마다 바로 잡아주시는 목사님이 계셔서 더 행복했고 다시 한 번 더 깊은 묵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예리한 눈빛속에는 지치지않는 주님의 사랑과 관심이 있다는 걸 알기때문입니다♡

후기3) Arthur W. Pink 목사님의 영적성장시리즈 '영적인 기도'를 계속해서 이어갈려고 기도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