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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 2] 서문 2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연합과 친교 (Spiritual Union and Communio

[가상칠언 2] 서문 2

En Hakkore 2024. 5. 13. 11:15

예수님의 죽음을 묘사한 복음서의 이야기들을 주의 깊게 연구해 보면 이 주장에  대한 일곱 가지 증거들과 근거들을 찾아볼 수 있다.

3. 다음으로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네 번째로 하신 말씀인 "내가 목 마르다"를 보자. 그 정황에 감안한다면, 이 말씀은 우리 주님이 침착하셨다는 것을 보여 주는 놀라운 증거이다. 전체 구절은 이러하다: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시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요 19:28).

구주가 쓸개즙을 탄 신포도주를 받게 된다는 예언이 구약에 있다. 그리고 이 예언을 이루시려고 예수님은 "내가 목마르다"라고 외치셨다. 예수께서 침착하셨고, 정신이 맑으셨으며, 참혹한 고통때문에 혼란스럽거나 흐트러지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여 주는 훌륭한 증거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지 여섯 시간이 다 되었을 때, 그는 예언의 말씀을 전체적으로 살피셨고, 자신의 수난과 관련된 예언들을 하나하나 점검하셨다. 사후에 이루어질 예언들을 제외하고는 아직 남은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한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시 69:21)였다.

주님은 고난 중에도 이를 간과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룬 줄 아시고, 성경(시 69:21)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이 또한 예수께서 "자기 목숨을 버리셨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4. 요한복음 10장 18절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성령께서 인도하셨다는 또 다른 증거가 요한복음 19장 30절에 있다.

"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이 말씀에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여기에서 구주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분명히 그 답은 멀리 있지 않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명백하다. 이전에 주님의 머리는 곧게 들려 있었다. 정신을 잃고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던 무능력한 자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의 머리는 가슴 위에 축 늘어져 있어야 했다.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기에 쓰인 동사를 자세히 보면 머리가 "떨구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의식적으로, 차분하게, 기품있게, 머리를 숙이셨다. 십자가 위에서조차 그의 몸가짐은 그렇게 고귀했다! 온전히 평정을 유지하셨다는 증거이다.♡

무엇보다도, 백부장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마 27:54)라고 감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넘치는 위엄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이겨내는 주님의 모습 때문이 아니었을까!

5. 이제 주님의 마지막 행동을 보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눅 23:46). 그 누구도 이렇게 하지 못했고, 이렇게 죽지 못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자주 인용했던 예수님의 말씀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는 내게서 빼앗을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요 10:17-18).

십자가 위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과 순교하던 스데반의 말을 비교해 보면, 주님의 행동이 독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는 요단강 가에 섰을 때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 7:59)라고 외쳤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그리스도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스데반의 영혼은 그에게서 거두어졌다. 구주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가져갈 수 없었다. 그는 다만 영혼이 "돌아가시었다."

6. 군병들이 십자가에 달렸던 주님과 강도들의 다리를 어떻게 다루었는가가 그리스도의 죽음이 독특했음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증거이다.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르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꺽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요 19:31-33).

주 예수는 두 강도가 함께 못 박힐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자신들의 십자가에 같은 시간 동안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날이 저물 때에 두 강도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십자가 처형은 잘 알려진대로 고통은 극심하지만 죽음은 서서히 왔다.

몸의 급소가 직접적으로 다치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기진해서 죽기까지 이삼 일이나 걸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단지 여섯 시간 만에 죽으셨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유대인들도 이것을 알았고, 빌라도에게 세 명 모두의 다리를 꺾어서 죽음을 앞당기자고 요청했다. 그런데 군병들이 갔을 때 구주는 "이미 죽어 있었다." 두 강도는 여전히 살아있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주께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 것"이지 목숨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는 또 다른 증거이다.

7. 그리스도의 죽음이 초자연적이라는 마지막 증거로 주께서 숨을 거두셨을 때 일어난 기이한 현상들을 주목해 보자.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여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마 27:51-52). 그것은 골고다의 거친 언덕 정상에서 보았던 일상적인 죽음이 아니었고, 뒤따라 일어난 일들도 범상치 않았다.

첫째,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손이 성소의 예배자들과 하나님의 지상의 보좌를 가로막았던 휘장을 갈라 두 조각 낸 것을 보여 주며, 지극히 거룩하신 분께 나아가는 길이 이제 만들어졌고,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통로가 아들의 상한 몸을 통해 열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어서 땅이 진동했다. 한 차례의 지진이나 "대규모의 지진"이 아니라, 땅 자체가 전체적으로 그 근본이 흔들리고 그 축이 요동하여, 마치 지구 표면에 영원히 새겨질 가장 가공할 만한 일로 땅이 온통 겁에 질린 것과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바위가 터지고," 즉 그 죽음의 거대한 힘 앞에서 자연의 힘은 꺾였다. 마지막으로 "무덤들이 열리며"는 사탄의 능력, 즉 죽음이 두려워 떨며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보여 주었다. 대속의 죽음이 지니는 가치를 외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자신을 잡으러 온 무리들의 손에 스스로 내어 주신 게 명백하다. "크게 소리질러" 외치신 것은 원기가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을 아시고"가 증명하는 것은 주님께서 정신적으로 온전하시고 바른 평정을 유지하셨다는 사실이다.

곧게 든 머리를 "숙이셨다." 아버지의 손에 자신의 영혼을 의도적으로 "부탁하셨다." 군병들이 다리를 꺾으려고 왔을 때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생명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버리셨다는 것을 입증한다.♡

성소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리는 기이한 일들도 예수님의 죽음이 초자연적이라는 특징을 보여 주는 틀림없는 증거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라고 경탄해 마지않는 백부장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독특하고, 기이하며, 초자연적이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입술에서 떨어지는 말씀을 경청할 것이다. 그 말씀 속에서 우리는 이 위대한 비극의 주변 상황들을 알게 될 것이고, 고난을 받으신 그분의 탁월함을 보게 될 것이며, 우리를 구원하는 복음의 완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거룩한 죽음의 목적, 의미, 고난과 충분한 능력을 깨닫게 될 것이다.

Arthur W. Pink 가상칠언 그 의미와 적용 p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