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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연합과 친교 74] 체험적 연합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연합과 친교 (Spiritual Union and Communio

[영적인 연합과 친교 74] 체험적 연합

En Hakkore 2024. 5. 1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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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패려한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만족할 것이다"(잠 14:14). 그리스도인이 주님과의 접촉을 잃고 그의 죄악과 허물로 인하여 그로부터 주님의 얼굴을 가리운 바(사 59:2) 되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전에 그는 그리스도와 행복한 교제를 하였으나 이제 그리스도의 얼굴의 빛이 더 이상 그에게 비추이지 않는다.

예전에 그는 모든 이해력을 초월한 주님의 평안을 소유했었으나 이는 그에게는 구원의 기쁨이 사라져 버렸다. '그의 처음 사랑을 버린' 자는 물론 성령을 슬프게 하여 이제 주님께서는 그의 마음에 주님의 위안을 주지 않으시며 그러므로 그는 항상 그의 처지에 대하여 어둠과 의심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되어 그의 영혼은 안식을 얻지 못한다.

그는 악마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다. 그런데 그 악마가 애굽의 감독자처럼 무자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잠시 죄악의 쾌락으로 돌아가 이제 그는 약탈당하고 벗겨지고 상처받으며 반은 죽어서 버림받게 된다.

이 세상에서 믿음을 배반한 자보다 더 불쌍한 자는 없다. 그와 그리스도와의 친교는 깨어지고 말씀에 대한 흥미도 잃게 되어 그 안에 있는 기도의 영이 사라진다. 그러나 또 한편 그는 세상으로부터 해를 받고 경건치 못한 사람이 행하는 육적인 일에서 만족을 얻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의 경우는 절망적이란 말인가? 스스로 회복하는 데에 있어서는 절망적이다. 왜냐하면 길 잃은 양은 양떼에게 되돌아가는 길을 결코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적인 타락에서 배역자들을 회복시키는 일은 주권적 은혜의 행위이며 그것은 무한한 인내와 풍성한 은혜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들 안에서 행하여진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의 타락을 치유하시기 위해 계획하실 때에 그는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효과적으로 부르시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명하신 그러한 방법을 이용하라고 하시어 그들을 감동케 하시며 또한 그러한 방법이 그들에게 복을 줌으로써 그렇게 하신 것이다.

배역자들은 처음에 자신들의 경우에 대해서 절망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슬프게도 주님께 되돌아오는 것보다 주님을 떠나는 편이 훨씬 더 쉽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린 후로는 그가 지금에 와서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다는 것은 어렵다.

왜 그러한가? 왜냐하면 그의 마음이 몹시 무겁게 짓눌러지며 그의 양심에 죄의 짐을 지고 그의 온 영혼은 수치로 가득 차 있으며 한편으로는 영적인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모든 능력이 마비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주님과의 친교가 끊어졌으므로 불경함이 그 안에서 지배하게 되며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충만함과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의 충족성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그는 그의 경우는 희망이 없으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하는 사단의 거짓말에 기꺼이 귀 기울인다. 또한 그가 과거에는 그렇게 자주 그의 비참한 실수를 하나님께 고백했으나 이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소용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에 그는 거룩하신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사역에 의하여 새로운 희망이 그 내부에서 생기게 되며 모든 것이 회복될 수 없게 잃어버린 바 되었다고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영적 타락으로부터 회복시키는 문제와 방법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방법 외에는 다른 어떠한 방법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오해하고 있다. 그것은 새로 깨어난 영혼들에게 흔히 있는 일인데 가책받은 수많은 배역자들도 그와 같이 치유할 수 없는 길로 들어간다(그들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의사에세 달려가거나 물이 없는 물탱크로 달려간다).

로마교가 괴로운 양심으로부터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들에게 흔히 권력을 남용하는 것은 바로 이점에서인데 그 이유는 죄인이 복음의 빛의 실제적인 인도를 받지 않는다면 그는 그의 고난이 너무나 크며 그의 짐이 몹시 견딜 수 없는 것이라고 쉽게 속게 된다.

그러므로 그는 그에게 위로를 하는 모든 사람에게 기꺼이 귀를 기울이게 되며, 그리하여 참된 사람이 되지 않으면 그릇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디에서도 명하신 적이 없는 의무의 길로 인도함으로써 사람들의 양심을 심한 번민에 빠지게 하는 사제와 목사들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든지 있다. 즉, 고해성사와 육체적 고통과 순례와 자선하거나 종교적인 사업에 많은 돈을 희사하는 것을 구원의 방법이라고 확신토록 지도하는 것이다.

한편, 엉터리 신교도인들은 그 고통받는 영혼에게 만약 그가 하나님의 응답을 듣고자 한다면 그는 어떤 습관을 끊고 오락 등과 같은 종류의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이야기가 성경에도 나타나고 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위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미 6:6,7).♡

그러한 방법에 의해서 그들은 그들의 죄를 배상하고 그들의 이전의 상태로 복귀되어지기를 소망했다. 타락으로부터 회복되기 위해 이용되는 방법들이 성경에서 지시되고 있음을 유의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Arthur W. Pink 영적인 연합과 친교 p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