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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연합과 친교 75] 체험적 연합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연합과 친교 (Spiritual Union and Communio

[영적인 연합과 친교 75] 체험적 연합

En Hakkore 2024. 5. 1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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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고집세고 방황하는 자녀를 향하신 하나님의 태도를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대해서 가장 잘 알 수 있다.♡

그들이 일찌기 받았던 헤아릴 수 없는 호의에 대해 비열하게 배은망덕한 행동을 하고 그들의 마음이 여호와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당시의 감각적이고 무가치한 일에 마음을 쏟는 그들의 사악한 불충과 그들의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로 말미암아 주님의 이름을 심히 불명예스럽게 하는 것은 주님으로 하여금 그들을 완전히 싫어하며 그들을 포기해 버리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주님의 사랑이 변함없고 신실하고 풍성하다는 것을 나타내줄 뿐이다.

오, 우리의 거룩한 주님께서 넘치는 은혜와 자비를 이 쓸모없는 자들에게 베풀어 주시다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자기의 백성이 참으로 통탄할 영적 타락에 빠지기 쉽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경우에 꼭 맞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벧후 1:4)을 그의 말씀 가운데 은혜롭게 기록하고 계신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렘 3:22).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호 14:4)♡

우리가 믿음을 화합하고 올바른 방법들을 이용함으로써 그러한 약속들은 우리의 것이 된다. 그러나 만약 배역한 자가 그가 회복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바로 여기에서 한층 더 깊은 충고와 경고가 필요하다.

즉, 자기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께서 준비해두신 그러한 방법을 사용해 보려고 시도해 보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무들을 행하려고 하지 말라. 배역자들은 확실한 의무가 하나님에 의해서 명해진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고 그들이 그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확신할 때 마치 그러한 의무를 그들 자신의 힘으로 실행해야 하는 것으로 행동하기 쉽다.

무관심했던 것에 가책을 느끼고 기도를 소홀히 한 그들의 죄성을 깨닫고 말씀을 읽고 그들의 지체를 억제하며 그밖의 것들을 영적으로 실천하며 그들을 현재의 비참한 상태로 이르게 한 것이 그들이 이러한 은혜의 방법을 이용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그들은 지금 그 의무의 범위 내에서 외적인 일들을 힘 닿는 대로 행하고 싶어한다.

슬프게도, 우리는 참으로 무지하고 실수가 많은 피조물이며 다루기 힘들며 교만한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힘이 사용될 때에 우리는 '성령의 격려하심이 아닌' 체하며 자기의 공로로 생각한다. 우리가 은혜를 새로이 받기 위해 하나님을 기다려야 할 때에 우리는 육체의 힘으로 열심을 내려 한다.

우리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하신 그리스도의 겸손하신 말씀을 진심으로 믿는 데 있어서 참으로 더디다. 주님의 그 말씀은 우리의 교만과는 일치하지 않는데도 우리는 자만에 빠진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진리를 기쁨으로 받아들이기 이전에 우리에게 많은 뼈아픈 실수를 체험케 하신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회복에 필요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돌진하는 것과 쉽사리 주님을 저버리는 것에 대비하여 많은 경계를 기울이도록 하자.♡

하나님이 유일하게 우리를 '치료'(출 15:26)하실 수 있으며 오직 그만이 영혼을 '건지실'(시 22:4)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에 의해 의무를 수행하는데 그리스도의 은혜와 도움을 겸손되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우리가 그것들을 성실하게 이행한다 할지라도 그 일이 우리의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복되신 주님께서 자신의 백성의 회복을 위해 명하신 그러한 의무를 깊이 생각해 보자.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 2:4, 5).

우리는 전장(前章)에서 '처음 사랑을 버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므로 이제 여기서는 방향을 돌려 그 치료법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것은 우리의 속사람의 중심에 대한 것인데 세 가지 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생각하라'는 말은 지성과 양심에 대한 말이며, '회개하라'는 말은 감정에 대해 하는 말인 반면에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말은 의지를 향한 요구이다. 우리가 타락할 때 우리의 전인격이 범죄하였으므로 그 전인격(영혼의 모든 기능)은 우리 주, 곧 구주에게로 되돌아가야 한다.

회복의 길이 여기에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길이 육체가 싫어하는 길, 곧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낮추는 것이기 때문에 그가 그것에 순종할 때까지는 그리스도와의 참된 친교는 없으며 그 결과로 생기는 평안과 확신과 기쁨도 없다.♡

Arthur W. Pink 영적인 연합과 친교 p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