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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연합과 친교 70] 체험적 연합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연합과 친교 (Spiritual Union and Communio

[영적인 연합과 친교 70] 체험적 연합

En Hakkore 2024. 5. 10.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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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주의깊게 지적해 보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여기에서 "너희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흔히 이렇게들 오해하고 있다)가 아니라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셨다는 사실이다. 이 표현은 좀더 명확한 행위이며 책임에 대한 실패를 강조해 준다.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 슬픈 상태는, 결과적인 하나님의 일을 향한 의욕의 상실, 수단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의 점차적인 부주의, 의무수행의 형식성과 함께 은혜 안에서의 부패, 영성에서의 타락, 사랑의 감소를 의미한다.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 마음의 상태는 외관상의 타락을 동반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제된 금이 빛을 잃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는 더 이상 영혼의 사랑의 첫자리를 차지하시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사랑의 부패를 의식하고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진지하게 결코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 낸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향한 자기의 사랑이 점점 쇠약해감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겨울날 불가를 떠나면 몸이 곧 한기를 느끼듯이, 시간적이고 감각적인 일들이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친교에 밀려 들어오게 되면 영혼의 열성과 열정은 곧 쇠퇴한다. 그러나 은혜가 쇠퇴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첫사랑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님의 '씨'(요일 3:9)는 하나님의 백성이 타락할 때조차도 그 안에 남아 있다.♡ 다윗이 그랬고 베드로도 그러하였다. 중생할 때에는 파괴될 수 없는 생명적 원리가 전해진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슬프게 식어져서 괴로움을 당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는다. 그것의 행위와 열매는 거의 없고 그것의 분량은 매우 적을지라도 그것의 뿌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 영적인 질병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하여(그리고 사탄의 거짓말을 막기 위하여) 그렇지 않은 것을 지적해 보자.

첫째로, 새로와진 마음이 깨닫고 슬퍼하는 모든 언짢은 기분이나 불쾌함은 우리의 첫사랑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알려진 죄의 행위는 전혀 변절이 아니다. 그것은 식사를 한 후에 몸에 열이 오르는 것과 열병이 아닌 것과 같다. 지극히 영적인 성도 안에도 허물과 부족이 있다. 옛 작가가 말한 바와 같이 '만일 모든 헛된 생각과 한담과  잘못된 열정이 사랑의 쇠락이라면 의인들에게는 참으로 서글픈 일일 것이다'.

어떤 특별한 행위로써 자신을 판단하는 것만큼 불확실한 일은 없다. 왜냐하면 모든 행위 속에서 사랑이 언제나 똑같이 강력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어떤 방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잠시 후에는 여전히 사랑을 지속한다.

둘째로, 영혼이 황홀한 체험을 하지 못하거나 그것이 경감되었다고 해서 첫사랑을 버린 것은 아니다.

회심할 때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처음으로 대면한 데 대한 큰 기쁨과 영혼의 고양이 있지만, 그러한 체험은 지속될 수도 없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건강한 사람은 규칙적으로 음식을 먹지만, 그는 몹시 배가 고팠던 사람이 처음 밥을 먹었을 때의 감정을 기대하지 않는다. 회심할 때 우리의 사랑은 예민하게 표현되는데 그 이유는 아직 그 사랑이 여러 가지 면의 순종을 통해 흩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사랑의 표현을 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을 배우게 될 때, 그는 하나님을 향한 참된 열정과 사랑을 가지게 될 수 있으며 사랑 안에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게' 되는데 이것은 자기의 죄가 모두 용서받았으며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때 체험하게 되는 영혼의 황홀함이 없이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세째로,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특별한 때, 즉 그에게 하나님의 법정에서 그 기쁜 날을 주셨던 때처럼 자기의 마음이 더 이상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다고 하여 자기의 사랑이 부패하였다고 결론지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위해 축연을 베풀어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시 63:5)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게 하시는 경우가 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하게 체험하시를 좋아하고 피조물의 모든 기쁨도 이에 비교할 수 없는 때가 있다. 그런 것은 매우 큰 자비이지만 그것들이 결코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의 상태를 시험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안정되고 고요한 영혼의 평화는 때때로 있는 기쁨의 황홀보다 훨씬 큰 자비이다.♡ 만일 우리가 영적인 일에 계속적으로 관심을 갖는다면, 그것은 돌발적이고 때때로 일어나는 황홀감보다도 우리가 은혜 안에 있다는 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된다.♡

Arthur W. Pink 영적인 연합과 친교 p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