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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연합과 친교 53] 실천적 연합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연합과 친교 (Spiritual Union and Communio

[영적인 연합과 친교 53] 실천적 연합

En Hakkore 2024. 5. 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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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앞에서 이야기된 내용을 다시 반복하여 보자.

구원의 큰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단지 명목상의 교제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이성적이며 기쁨의 교제로의 회복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는가?" 즉, 거룩하고 영적인 교제의 길에서 어찌 동행하겠는가?

참으로 그렇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의 계명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 계명과 함께 즐거워해야 하며 그 계명의 통제의 영향 아래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다"(요일 1:5-7).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였다"(행 11:21-23).

'주께 돌아온' 이들 젊은 개종자들은 이제 '주께 붙어 있으라' 고 권유를 받는다. 즉 그리스도와의 구원의 연합을 이루었으므로 그들은 '굳은 마음으로' 그리스도와의 실천적 연합과 교제를 지속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주께 붙어 있다'는 것은 주를 의지하여 주께 헌신하는 생활을 말한다. 즉, 그리스도께 '나아온' 후에 그들은 이제 주를 열심히 '따르며', "그의 행하시는대로 행해야"(요일 2:6) 한다. 계속하여 믿음을  실천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용감히 고백하며 그의 명령에 복종함으로써만이 우리는 "여호와를 알 수 있다".(호 6:3)

그리스도와의 실천적 연합이라 함은 순종을 실천함이다. 또한 실천적 연합은 구원의 연합을 이루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하다.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유일한 순종의 방법은 복음적 순종인데 그것은 믿음에 의한 순종이다(롬 16:26).

즉 믿음에서 오는 순종이며 순종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력이 있게 된다. 믿음이 있기 전에는 진정한 순종이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히 11:6)고 말씀하셨으므로 믿음 없이는 하나님꼐 순종할 수도 없다.♡

믿음은(우리편에서) 그리스도와 결합하는 연합의 띠이며 순종은 믿음의 연합의 열매이다. 로마서 7:4을 다시 보라. 결혼 전에 태어난 모든 '열매'는 사생아이다. 우리의 인격은 먼저 우리의 섬김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선한 행위들은 믿음의 열매이거나 믿음의 순종이었다.

믿음과 순종이 비록 불가분하게 관련되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아주 별개의 것들이다. 믿음은 원리이며 순종은 결과이다. 즉, 믿음은 원인이요 순종은 결과이며 믿음은 뿌리요 순종은 열매인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의로우신 주님으로서 받아들이고 소유하게 된다.

또한 순종으로 인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우리의 행동을 규제한다. 믿음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와의 구원의 연합이 있게 되고 순종으로 인하여 주님과의 실제적 연합이 유지된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사랑의 친교안에서 순종의 길을 걷고 있는 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실분이다.

이에 대한 이상적인 실례가 창세기 18장과 19장에서 대조되어 나타나 있다. 두 천사가 동반하여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창 18:1). 이는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내심이다. 그러나 롯에게는 오직 '두 천사'만이 왔다(창 19:1). 그러므로 롯은 여호와와 함께 실제적 연합 안에서 동행하지 아니하였다.

오, 우리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자신의 고집을 허용함으로써 우리는 참으로 많은 실수를 한다.

믿음과 불가분하게 관련된 또 하나의 영적 은혜가 있다. 즉,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 5:6)이다. 믿음의 진실성과 성실성은 사랑의 실제와 실천에 의해서만 입증된다. 믿음은 행하는 손이지만 사랑은 움직이는 힘이다. 믿음은 행하는 발이지만 사랑은 발을 행동으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이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라고 부르짖고 있음을 알게 된다(시 119:32). 이제 믿음 없이는 그리스도와 구원의 연합을 이룰 수 없는 것과 같이 사랑 없이는 그와 함께 실제적 연합을 이룰 수도 없다. 사랑은 사랑으로써 응수되어야 한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어라"(잠 23:26)는 말씀은 사랑하는 우리 주님의 부르심이다. 사랑은 모든 능력과 은혜를 움직이는 영혼 안에 있는 주요 원인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롬 13:10)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이다.

또한 참다운 회개는 사랑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열렬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에 대한 우리의 증오는 더욱 더 강렬하다. 우리 마음 안에서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달콤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죄에 대하여 더욱 씁쓸하게 느낄 것이다.

이것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고후 7:10)이다. 그것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슬픔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주님을 불쾌하게 하고 불명예스럽게 하는 것에 대해 슬퍼하게 된다.

사랑은 교제가 파괴되고 주님 모습이 감취어짐을 슬퍼한다. 그리하여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여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 지 오랜 자같이 흑암한 곳에 거하게 하였나이다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나이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셀라)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혼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시 143:3-7)라고 번민하는 영혼이 부르짖는다.

위에서 우리는 신자와 그리스도 사이에 존재하는 구원의 연합과 실천적 연합과의 관계를 간단히 말했다. 즉 그것은 실제로 무엇이 실천적 연합을 이루며, 실제적 연합이 깨어졌을 때 무엇으로 말미암아 다시 회복되는가에 대해서이다.

즉, 그것은 참다운 회개와 겸손된 신앙고백에 의해서 회복된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주제들 가운데 이 부분만큼은 오늘날 상당히 소홀히 되고 있으며 그러한 만큼 그리스도의 영광과 우리 영혼의 행복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좀 더 자세히 다루어져야 할 것 같다.

Arthur W. Pink 영적인 연합과 친교 p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