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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연합과 친교 20] 중보적 연합 5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연합과 친교 (Spiritual Union and Communio

[영적인 연합과 친교 20] 중보적 연합 5

En Hakkore 2024. 5. 7. 12:00

우리는 하나님의 성육신 그 자체의 본성이 무엇인가, 즉 말씀이 육신이 될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고찰해 보도록 하자, 여기에서 우리는 최고의 경의와 신중함으로 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근거가 참으로 거룩하기 때문이다.♡

오직 성경을 근거로 함으로써만 이 오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안내자가 되어 주실 때만이 우리는 진리에 인도될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은혜로이 내려주신 제시 안에 있는 일점 일획까지도 자세히 유의할 때만이 그같은 완전한 지식에 접근하는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주께서 우리에 우리의 마음태세를 갖추게 하시고 주님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연구할 때에 비록 어려운 것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에 앞으로 오게 될 구원자는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입어야 한다고 여러 가지로 암시해 주셨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뱀에게(아담에게 하신 약속이 아니라는 것을 주목하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구주가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암시이다. 그러나 구주는 인간보다 더 뛰어날 것이라고 명백히 암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단의 세력을 물리치는 것은 전능자의 사역이가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롬 16:20). 또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고 성경에 분명히 계시되어 있다.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사 9:6).

창세기 18:1,2과 32:24, 여호수아 5:13, 14 등에서와 같이 고대의 '여러 차례의 신의 현현'에서 하나님의 성육신이 예기되었으며 어렴풋하게 나타났는데 각 경우에 있어서 그 '사람'이란 분명 현세적 인간의 모습을 한 여호와 자신이었다.

이제 말씀이 육신화하는 데에는 세 가지 다른 사실이 있다. 즉 주님의 인성의 사실상의 출현과 그 인성의 깨끗함과 그 인성을 친히 입으심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의 출현은 기적적인 잉태로 말미암았고 그로 인하여 주님의 인성이 사람의 힘으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이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사역으로 인하여 마리아의 본체로 만들어진 것이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5).

그러나 여기에서 어떤 의미에서도 성령이 예수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점을 집고 넘어가자.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비록 그의 인성을 만들어 주셨다 할지라도 그의 동정녀 어머니의 씨에서 그의 인성을 기적적으로 조성하신 것뿐이다.

"비록 그리스도의 인성이 일반적 출생이 아닌 기적적인 잉태에 의해 한 개체가 되었다 할지라도 마치 일반적인 출생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잉태되어 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참 아들이었다. 그는 그녀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었다. 그는 그녀의 본체와 피로써 만들어졌다. 그는 평범한 어린이가 평범한 어머니와 동질인 것과 같은 의미로 그녀와 동질을 이루었다."(W. 쉐드. 1889)

성령의 전능하신 권능 아래 마리아에게 잉태된 것은 인간의 인격이 아닌 인간의 본성이었다.♡ 그리하여 성경은 "나실 바 거룩한 자"(눅 :35)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 사실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

거룩한 삼위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신비를 심사숙고함으로써 우리는 본성과 인격을 뚜렷이 구별해야 함이 참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왜냐하면 신성 안에 삼위가 있으나 그들의 본질이나 본성은 오직 하나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중보자의 인격을 관찰해 볼 때, 바로 이같은 차이를 조사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께서 비록 인성을 입으셨다 할지라도 주께서 그 자신에게 인간의 인격을 연합시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혼합된 것이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지만 그의 인격이 이중인격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 주님께서 인성을 입으신 최초의 순간에 그 인성은 오직 '씨'로써 혹은 동정녀 마리아의 개체화되지 않은 본체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불완전한 인성이란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기본적인 속성이 인성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태 안에서 잉태되어 특별한 인격이 되시기 이전에 이미 인성을 입으신 것이다. 이것은 그가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히 2:16)이다. 주님의 인성은 그의 신성과 기적적으로 연합함으로써 인격화되었다.

비록 인성에 아무런 새로운 속성이 첨가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인성은 새롭고 독특한 형태가 되었다. 그것은 주께서 단순히 물질적인 몸만을 입으신 것이 아니고 인간의 영과 혼과 육을 입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면에서 형제들과 동일하시나 죄는 없으시기" 때문이다.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라고 하신 히브리서 10:5의 말씀에서 명백히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입으신 인성은 인격이 없는 인성이었다. 전체적 인간의 본성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그 '몸'은 '나' 또는 '인격'이 아니라 그가 자신에게 붙들어 두셨던 어떤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컨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4). 한 사람이 죽었음을 주의깊게 살펴보라. 비록 두 가지의 본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오직 하나의 인격일 뿐이다.

영과 혼과 육체로 된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의 인격과 연합할 때만을 제외하고 본질적으로나 단독으로는 아무 본체도 갖지 아니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의 인격이 인간의 완전한 인격과 결합하지 못했던 것은 무슨 연유에서인가?라는 물음의 대답에서,

그 유명한 제임스 어쉬(1654)는 첫째, 하나의 완전한 중보자를 만들기 위하여 두 개의 인격적 연합이란 네 개의 위가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둘째, 그렇게 되면 삼위일체 안에 내 개의 위가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세째, 그렇게 되면 각각의 본성의 하는 일들을 전체적으로 인격이 하는 일로 간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햤다.

Arthur W. Pink 영적인 연합과 친교 p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