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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기도 60] 제11장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기도 (Effectual Fervent Prayer)

[영적인 기도 60] 제11장

En Hakkore 2024. 5. 4. 18:48

유다서 24,25절(I)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유 24,25절)

우리를 보호하시어 거침이 없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지킬 의무와 관계가 있다♡

이제 이 기도와 보다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 무엇인가 살펴보자. 앞의 여러 경우에서 우리는 문맥의 전후관계를 세밀히 살펴보는 것이 참으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보아왔다. 진리의 균형이 유지되고 반율법주의의 경향을 점검하기 위해서는 여기에서도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먼저 21절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자기를 지키라"라는 명령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너희를 보전하시어 흠이 없게 하시는 자"라는 기도 속에 함축되어있는 약속을 붙잡는다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 훈계와 약속을 구분할 수는 있을지언정, 분리시킬 수는 없다.

전자는 우리의 의무를 알려 주는 것이고, 반면에 후자는 우리가 이 일을 진심으로 성실하게 수행하려고 할 때 우리를 격려해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자는 위로받을 자격이 없다.

사도는 보는 교회를 배교의 시작과 그 과정과 종말을 상세히 설명한 후에 20-23절에서 성도들에게 간결하게 7가지를 권고한다. 이것들은 믿음, 기도, 사랑, 소망, 긍휼, 두려움, 경건한 증오를 수행하도록 당부한 것이다. 이 권고들은 우리로 배교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수단이다.♡

칼빈은 이 권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유다는 그들이 사단의 모든 궤계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믿음으로 맺어진 사랑을 하며 망대 위에서 깨어 지키라는 것이다.

훈계와 경고를 주는 교리를 올바로 활용하는 방법

사람의 주제에 관한 아돌프 사피르(Adolph Saphir)의 믿음의 말에 경건하게 주의를 기울이자

신자들은 그들(또는 신앙고백을 한 신자)의 실제 상태, 즉 그들은 여전히 노상에 있고 투쟁중에 있으며 주님이 돌아오시기를 고대하면서 받은 달란트대로 장사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일방적이고 비성서적으로 잊고 있는 것 같다. 길에는 많은 샛길과 위험과 벼랑이 있으므로 끝까지 인내해야 한다.♡

인내하여 죽도록 충성하는 자만이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교훈과 경고를 무시하고서, 복되고 엄숙한 선택론(選擇論)과 성도의 견인론(堅靭論)을 한갓 어려울 때의 강심제 수단으로써, 그리고 하나님과 교제하고픈 사람들의 가장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비결로서 생각한다거나, 혹은 그 교리들을 우리의 평범한 의우나 시련에 적용시키는 처사는 신령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세속적인 방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경고와 계명들을 통하여 우리들을 보호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의 이 말씀을 소홀히 하고 간과해버리는 영혼의 태도야말로 순수하지 못하고 견손하지 못하고 신실하지 못한 일이다. 성경이 배교에 대해 주는 두려운 경고를 변명하려는 것은 매우 병적이고 위험스런 정신상태에서 유발한 것이다.

벼랑은 벼랑이다.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만일 우리가 육체를 따라 살면 죽으리라"라고 사도는 말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벼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냘프고 우아한 화초 울타리를 둘러서는 안되며 할 수 있는 한 강한 방벽을 쌓고 재난을 방지하기 위해 뾰족한 못이나 깨어진 유리 조각들을 박아 놓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문제의 외관에 불과하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끝까지 인내한다는 것은 크고 엄숙한 사실이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삶만이 이 세상에서 가치가 있다.♡ 애굽에서 우리를 구해내신 분이 지금도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따르고 끝까지 함께 한다면 우리는 최후의 안식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20~23절에 나타난 교훈에 대해 여기에서 완전한 강해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내가 이 훈계들과 우리가 다루는 본문 사이의 뗄 수 없는 연관성을 자세히 살펴보려면 몇 가지 논평이 필요하다고 본다.

의무와 특권은 분리되어서는 안되며, 특권으로 말미암아 의무를 저버리도록 해서도 안된다. 영광중에 계신 그리스도와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라면, 그것은 그분이 약속하신 그 길을 따르고 그분이 그에게 맡기신 일과 병행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신자로 믿음에 파산하지 않도록 확실히 지켜 주시는 분이시긴 해도 그분이 그렇게 하시도록 그 제자들 스스로의 진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가 주속한 자들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피조물로 다루고 계신다.

그는 그들을 위협하는 죄악들을 극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는 도덕적인 대행자로서 그들이 행동하기를 요구하신다. 그분께 전적으로 의지한다고 해서 수동적인 자세가 되어서는 안된다. 인간은 활동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더 잘되든가 더 못되든가 해야 한다.

중생 이전에 실로 그는 영적으로 죽어 있지만 신생할 때 그는 하나님의 생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생명에는 운동과 활동이 따르며 그 운동은 하나님의 교훈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우리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유다가 이 서신을 쓸 때 틀림없이 이 사실을 기억했을 것이다.(요 14:21, 22).

Arthur W. Pink 영적인 기도 p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