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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기도 62] 제12장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기도 (Effectual Fervent Prayer)

[영적인 기도 62] 제12장

En Hakkore 2024. 5. 5. 15:49

유다서 24,25절(II)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유 24,25절)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이 기도와 관계있는 것을 더 살펴보려 할 때, 주 예수께서 이렇게 보호하시는 자들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가룟 유다의 경우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믿고 그를 따르는 자가 되겠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모두 다 배교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보호하시는가? 분명히 하나님도 앞 장의 끝부분에서 토의되었던 20-23절의 권고에 순종하려고 참된 노력을 하는 자들을 보호하신다. 이러한 참된 신자들은 현재 그들이 소유한 지식이나 영적으로 도달해 있는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하여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려고 진지하게 노력한다.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마음 상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면서, 하나님을 향한 자기의 사랑이 헌신과 순종의 행위를 규칙적으로 함으로써 순결하고, 건강하고, 활기찬 상태에서 보호될 수 있도록 방심하지 않고 자기의 감정을 살핀다.♡

이 참된 성도들은 세상과 희롱하고 육체의 정욕에 빠져 쾌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한다. 진실한 이 제자들은 자기의 의무들을 수행하기 위한 성령의 도움을 받기 위해 뜨겁게 기도하며 그리스도 안에 형제 자매들의 복지를 간절히 원한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그들의 모든 약함과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써 배교하지 않도록 보호를 받는 자이다.

이 기도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두 가지 해석 원리

성경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것은 진리의 말해지는 순서를 살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다윗이 "너희 행악자여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리로다"라고 말함을 본다. 그는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라는 기도를 드리기 전에 먼저 이 말을 했었다(시 119:115, 116).

만일 그가 하나님의 훈계에 순종하기로 결심도 하지 않고, 자기를 지지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면 이 기도는 진실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를 붙들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두려운 조롱이 된다.

먼저 우리편에서의 거룩한 목적과 결심이 있어야 하며 그 다음에 능력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또한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한 문장을 수식하는 그 문맥에서 그 문장을 떼어냄으로써 하나님께서 합하신 일을 분리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내 양은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라는 말씀이 가끔 인용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이 말씀은 실제로 올바른 것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과 꼭 같지는 않다. 즉 그리스도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주의하며) 나는 저희를 알며 (인정하며) 저희는 (저희의 육적 성향과는 반대로)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주의깊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요 10:27, 28)라고 말씀하셨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보호받는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이 말씀 안에서 우리는 사도 유다의 기도의 첫번째 근거를 찾아낼 수 있다. 즉 성도들로 배교하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것이다. 통찰력이 있는 독자는 위의 말에서,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가 하는 문제가 이미 예시되어 있고 대답되어져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행성들로 그들의 행로를 잘 지키게 하고, 물리적인 힘으로써 행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보호하신다. 그리스도는 영적 능력과, 자기 백성들의 영혼 안에서 자기의 은혜를 효과적으로 작용시키어 그들을 보호하신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들로 무모하게 자기 만족에 빠지지 아니하고 자기를 스스로 부정하도록 보호하신다. 그는 그들로 자기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고 자기의 훈계를 실행에 옮기고 그들에게 남겨 준 모범들을 따르도록 가동시키심으로써 그들을 보호하신다.

그는 그들로 믿음과 거룩 안에서 인내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을 보호하신다. 그의 것인 우리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으며"(벧전 1:5).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뿐만 아니라 계명들도 존중한다(시 119:66; 히 11:8).

그리스도는 참으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히 12:2)이시다. 그러나 그분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그 믿음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성령을 통하여 그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어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빌 2:13).

믿음이 우리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와지게 하는 유효한 수단인 것처럼, 믿음 안에서의 우리의 인내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를 보호하시는 도구가 된다.(살전 5:23; 유 1절)

성도들에게 그들의 의무에 관하여 훈계한 후에(20~23절) 유다는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실 자께"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능력과 또 그들의 노력에 대한 축복을 누구로부터 구해야만 하는지를 암시하고 있다. 그의 편지를 읽는 사람들은 보호받기 위해서 온전히 주 예수께만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들의 근면을 점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로 이길 수 있다는 소망을 갖게 하기 위하여 이것을 말하고 있다. "저를(우리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롬 14:4)는 것을 아는 일은 믿음에 큰 위안이 된다.

존 길(John Gill)은 유다서 24절에 대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능력이 없다면 뉴혹과 죄와 잘못과 ...... 최종적이고 전체적인 배교에까지 빠지기 쉽다"고 설명한다. 그렇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악한 기질과 약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므로 그들은 자주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에 항상 주의하리이다"(시 119:117)라고 부르짖는다.

그들은 순수 상태에 있던 아담이 자신을 타락하지 않도록 지킬 수 없었음과 또한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그러하였음에 관하여 읽을 때에, 그들과 같이 불완전하고 죄 많은 피조물들은 스스로를 지킬 수 없음을 아주 잘 알게 된다.

하늘로 가는 길은 좁으며 그 양편에는 절벽이 있다. 그 안팎에는 나를 파괴시키려고 애쓰는 원수가 있는데, 하녀의 시험에조차도 넘어질 수밖에 없었던 불쌍한 베드로처럼 내게도 아무 힘이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원래부터 소유하고 있는 약함을 묘사하는 비유들은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묘사하는 데 쓰여지고 있는 모든 비유는, 즉 양과 포도나무 가지, 상한 갈대, 꺼져가는 불 등은 그의 약함과 무력함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능히 우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실 수 있는 분을 좀더 높이 존중하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체험적으로 자신의 약함을 알게 될 때이다.

독자들 중 혹 "나는 광야에서 멸망받아야 마땅한 존재라고 생각하니 두렵습니다"라고 떨며 말하는 자가 있는가?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지키고 실족지 아니하였나이다"(시 17:5)라고 부르짖을 때 여러분의 기도가 진지하다면, 여러분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는 여러분을 보호하실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능력은 한계가 없으며 그의 은혜 또한 끝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친 용사에게 참으로 큰 힘을 준다. 그래서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4)고 말하면서 스스로 위로한다. 이 서신에서는 택함받은 자들이 이중으로 보호받는다고 말한다.

즉 중생 전과 중생 후의 보호가 그것이다. 유다서 처음에서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버지는 자기의 영원한 섭리 안에서 그들을 구원하기기 위해 따로 떼어 놓으셨으며(살후 2:13) 그들이 효과적으로 부름을 받기 전부터 "보호하셨다."

이는 참으로 놀랍고 복된 사실이다. 양떼에서 떠나 방황하고 그들 자신의 목자를 멸시하고 있을 때조차도, 그의 사랑은 그들을 지키셨으며(레 32:3), 그의 능력은 갑작스러운 종말로부터 그들을 구해내셨다. 죽음은 택함받은 죄인이 거듭난 후에는 더 이상 그를 붙잡을 수 없다.

Arthur W. Pink 영적인 기도 p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