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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기도 51] 제9장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기도 (Effectual Fervent Prayer)

[영적인 기도 51] 제9장

En Hakkore 2024. 5. 4. 18:42

베드로전서 5:10,11(III)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때, 그리고 우리가 적과 싸울 때 더 증대된다♡

둘째로, 모든 은혜의 하나님은 그의 은혜가 우리를 지속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셨으며,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그 은혜가 가장 잘 나타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이 약속을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때를 따라 돕는 은혜"(히 4:16)를 주심으로써 더욱 영광스럽게 하는 은혜의 보좌를 찾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의 대부분은 연약한 자를 도우시는 때, 시험을 받는 자를 구원하시는 때, 타락한 자를 일으키시는 때 나타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투쟁을 면제해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싸움을 견디어 내게 해 주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적으로 은혜를 공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맨튼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여행을 끝마칠 때 그들에게 영광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여행 도중에 그들의 비용도 부담하신다."

세째로,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반대하는 자들과 싸우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불 같은 시련을 겪게 하셨다. 은혜가 왕노릇하며(롬 5:21) 군주의 위대함이 반역자를 정복하고 적을 물리침으로써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능력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강력한 바로왕을 세우셨던 것이다.

본문에서(벧전 5:8) 우리가 보았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는 사자와 같은 마귀들로 사납게 날뛰며 우리를 반대하고 공격하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를 패배시키려고 이 일을 행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강포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며"(사 49:25) 속히 "사단을 너희(우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기" 때문이다(롬 16:20)

고난은 은혜를 입증하여 하늘을 더욱 더 영화롭게 한다♡

네째로, 고난은 우리의 은혜의 시련과 증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즉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냄이라"(약 1:3). 베드로가 우리에게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신 것"(벧 1:3)이라고 말한 내용에 대하여 생각해 보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6,7)

그것은 알곡과 겨를 분리시키는 환난의 바람이며, 불순물과 금을 구별하는 용광로이다. 돌밭에 뿌리는 자는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마 13:21) 에 반대하여 넘어지는 자이다. 그러므로 또한 우리의 소망을 정결하게 하고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은 앞에서 언급한 일들에 빠져들기 이전에 이러한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더욱 더 완전하게 되어야 한다.♡♡

우리가 견디어 내는 환난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원한 기업의 영광은 더욱 더 증진된다. 토마스 굳윈(Thomas Goodwin)의 말을 들어보자.

하늘에는 기쁨과 행복뿐만 아니라 영광도, 그리고 정복함으로 얻는 영광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서신 중 각각의 경우에 묘사된 바와 같이 이기는 자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것이다. 그것은 이기는 자들이 지켜온 어떤 법에 따라서(딤후 2:5) 지배하고 투쟁함으로써 얻게 되는 왕관이다.

정복과 지배에 의해 얻은 영광이 더욱 더 가치있는 것이다. 야곱은 "내 칼과 활로" 빼앗은 것 중의 일부분을 그의 사랑하는 요셉에게 주었다(창 48:22). 우리는 사랑하는 그로 말미암아 이기고도 남게 되는 것이다.

은혜는 내적 외적 싸움에 모두 공급된다♡

9절에 나타난 고통이나 10절에 나타난 고난을 외적인 핍박과 시련으로만 제한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정욕에 의해서든 사단에 의해서든지 간에 모든 내적인 공격과 모든 시험을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다.

본문의 말씀은 비록 이런 뜻을 내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근심하라 깨어라"라는 말은 악한 일을 저지르게 하는 다른 모든 자극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욕에도 관계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귀를 대적하라는 명령은 분명히 죄에 대한 자기의 내적 유혹과도 관계된 말씀이다.

성도들은 누구나 경험을 통하여 그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극심한 고통은 때때로 그들 자신의 부패함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때문이다. 게다가 굳윈이 지적한 바와같이, "모든 은혜의 하나님"께 우리의 믿음의 눈을 고정시켜야 한다는 것도 같은 논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근본적으로 내부의 죄와 죄에 대한 시험에 대항하여 우리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의 모든 은혜의 모든 것은 모두 외적인 비참함에도 미치게 되며 내적인 병폐에까지 미치게 된다. 그것들은 우리의 지극히 큰 슬픔이요, 그 무엇보다도 우리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필요로 하며, 그리고 곧바로 우리 하나님의 은혜의 인도를 받아야 할 것들이다(시 119:14;119:1-16; 잠 3:5-7; 4:20-27).

하나님의 은혜는 믿는 자들이 굴복하기 쉬운 모든 악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회심한 후에 이전보다도 더 사악한 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있다. 그때에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들이 서야 할 곳은 어디인가?

Arthur W. Pink 영적인 기도 p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