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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기도 40] 제7장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기도 (Effectual Fervent Prayer)

[영적인 기도 40] 제7장

En Hakkore 2024. 5. 3. 11:46

베드로전서 5:10,11(I)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기도에 대한 큰 격려가 된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의 자비로움에 대해 성경 여러 곳에서 자주 언급되어 있지만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이곳 외에는 없다. 여기에는 "은혜의 하나님" 뿐만 아니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이라는 사실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하여 특별히 강조되어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굳윈이 이야기한 바와같이 하나님은 1) 그 자신의 풍성안에서 본질적으로, 2)그의 백성에 대한 영원한 계획 안에서, 3)그들을 실제로 다스리시는 그의 행위 안에서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실제로 그러하시다는 변치않는 증거를 받으며, 그들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확고하게 된 그러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매일 지워주시는 짐과 함께 하는 은혜가 그들을 향하고 그들을 향하고 계신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의 계획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좀 더 먼 과거를 회상하고, 그들의 눈은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올려다보고 그리고 모든 풍성한 은혜는 하나님께서 정하셨으며 그들이 혜택받는 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그러한 본성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굳윈은 "하나님의 본성 안에 있는 은혜는 샘이며 그의 계획의 은혜는 수원이며 그의 섭리의 은혜는 흐르는 시냇물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의 백성에 대해 "평안한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은 그의 본성의 은혜이며, 또한 그로 하여금 그 평안을 성취하도록 하는 것도 그의 마음 속에 있는 은혜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속에 내재하는 바로 그 본성의 은혜는 그의 모든 은혜로운 계획을 성취시킨다는 보증과 같은 것이다. 모든 일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자족하신 분이시며 또한 친히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자신을 무한히 자애로우신 분으로 만드시기에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계획과 섭리의 시냇물을 채워 주시는 은혜의 바다가 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큰 위안이 있다.

즉, 모든 은혜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의 자녀들에게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 되게 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에게 나타나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해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주신다고 보증하며, 앞으로 오는 여러 세대에 그들에게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엡 2:7) 아낌없이 나타내신다고 확증하는 그의 본성 안에 있다.

이제 우리는 "은혜가 충만하시고"(요 1:14) 하나님으로부터 계속적이고 보다 큰 공급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이시요 동시에 인간이시며 기름부음을 받은 자 예수와 함께 참여한 은혜의 시냇물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 안에는 끝없는 무한한 공급이 있기 때문에 궁핍은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것이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무엇을 아뢰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에 나아올 때 여러분이 "모든 은헤의 하나님"이라고 간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나 자신에게도 촉구한 바와같이) 말하는 바이다.

하나님 안에서 흘러 넘치는 무한한 바다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나아오라고 명령하시며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0)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신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든 은혜의 하나님을 즐거워 할 수 있다

주는 자는 그의 모든 선물보다 더 위대하다. 그러나 우리들 중 누구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기 위해서는 개인적이고 특정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만이 우리는 일반적인 것을 구체화시킬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에게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시지만 내가 하나님께서 실제로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그 안에서 기쁨을 누리려면 나의 믿음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

시편 59편에는 이러한 실례가 나와 있는데, 거기에서 다윗왕은 "나의 하나님이 그 인자하심으로 나를 영접하시며"(10절)라고 선언하고 있다. 거기에서 우리는 다윗이 개인적으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로, 다윗이 하나님의 본성 안에 파묻혀 있는 본질적인 인자하심을 어떻게 붙잡았는가를 살펴보라. 다윗은 17절 다시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기뻐하고 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므로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다. 나는 하나님을 그러한 분이시라고 선언하는 바이다. 즉, 하나님 안에 있는 모든 자비하심은 나의 것이다. 그분은 나의 하나님이시므로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나의 것이다.♡

결국 그의 사랑이 나에게 머물고 나에게 언약으로 맺으시고 또한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 21:7)고 말씀하시게 한 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자비와 은혜이다.

굳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형제들에게 은혜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만일 어느 형제가 모든 형제들이 느끼는 궁핍을 느끼고 있다면 그 어느 것도 그를 회심하게 할 수는 없으나 오직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소유하고 계시는 그의 모든 은혜만이 그를 돌아올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를 당신에게 부어주실 것이다....

가련한 영혼인 당신은 모든 것이 나의 죄라고 말하여 왔다. 나는 심각한 죄를 지었으며 나는 죄를 범하기 쉽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불행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다음의 내용을 생각해 보라고 권고하는 바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 안에는 때를 따라, 필요에 따라 베풀어 주실 수 있는 모든 은혜가 있다. 당신의 죄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더욱 크신 자비를 값없이 자기 뜻에 따라 나누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 속에 있는 그 어떠한 죄라도 용서받을 수 있다.

이와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 각자가 마치 그의 자녀인 것처럼 우리가 필요로 하는 때를 위해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아담의 범죄함의 죄책감과 비참함을 물려받은 만큼 확실하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자비하심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또한 다윗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자비를 붙잡은 사실을 살표보자. 각각의 성도에게는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러한 면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풍성하게 그 몫을 정해 두셨기 때문에 여러분의 죄나 필요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비는 결코 다함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인자하심으로 나를 영접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영접하셨고, 현명한 아버지가 그의 자녀의 병을 위해 치료와 더불어 병원비를 마련하는 것과같이 나의 모든 필요를 위해 미리 충분히 마련해 두셨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다"(사 65:24). 이것이 하나님의 독특한 성품이시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각각의 자녀들에게 자비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가 아닌가?♡

끝으로, 우리는 순간 순간 우리에게 실제로 내려지고 있는 하나님의 분배하시는 자비를 붙잡도록 하자. 또한 여기에서 신자는 모든 경우에 "하나님은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누리는 모든 복이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공허한 칭호가 아니다.

왜냐하면 사실, 다윗이 그 칭호를 사용하였다는 내용이 우리를 위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행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보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참된 믿음으로 그것을 사용하고, 어린 아이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면에서 나의 관심사를 보살펴 주실 것을 확고히 하신다. 하나님은 개인적으로 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나의 필요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Arthur W. Pink 영적인 기도 p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