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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기도 32] 제6장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기도 (Effectual Fervent Prayer)

[영적인 기도 32] 제6장

En Hakkore 2024. 5. 3. 11:38

베드로전서 1:3-5(III)

중생의 목표는 영화이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4절).

우리가 이 송영(doxology)을 연구하면서 일곱째로 살펴 볼 것은 그것의 실체이다. 중생은 영화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영적으로 출생하여 두 가지 실체를 지니게 된다. 즉 현재의 살아 있는 소망과 장차의 영광스러운 기업이다. 우리가 후자를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있게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의 출생에 의해서이다.♡

기업은 출생으로 말미암아 받는다. 즉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아들이 아니라면 후사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그러나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롬 8:17)이다.

출생은 자격을 줄 뿐만 아니라 기업 또한 보장하여 준다.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시는"(엡 1:14) 성령을 이미 받았다. 그리스도께서 기업을 사들이셨고, 성령은 후사들에게 그것을 알게 해 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을" 하나님은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기" 때문이다(고전 2:9,10).♡

중생한 자에게 그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것을 맛볼 수 있게 해주고, 또 하늘의 기쁨을 지상에 있는 그들의 영혼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바로 성령이 하시는 일이다.

신생은 즉시 우리를 하늘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해 준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출생은 하늘의 기업을 누릴 자격을 주고 그것을 확실히 해줄 뿐만 아니라 그것에 합당하게도 해준다. 신생시에, 하늘나라에 적합하고, 영혼으로 하여금 영원히 삼위일체 하나님과 살 수 있는 자격을 갖게 하는 한 본성이 주어진다(이것은 그의 현재의 하나님과의 친교를 통해 명백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의 지상에서의 순례 여행이 끝날 때에는, (지금 그의 친교를 방해하는) 내재하는 죄는 육체와 함께 죽는다. 중생시에 자신이 즉시 하늘에 합당하게 된다는 것을 성도들은 거의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은 평안과 기쁨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 때문에 자신들이 하늘의 법정에 가기 전에 좀더 엄격한 훈련과 단련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로마교의 또 다른 유물에 불과하다. 그의 영적 출생지가 낙원으로 즉시 옮겨졌던 그 십자가상의 강도에게서 잘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 아직도 율법주의적 잔재가 남아있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가 거듭난 바로 그 순간에, 비록 그가 이 지상에서 삶을 계속해야 한다고 할지라도, 그가 하늘에 합당한 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신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꼭 은혜 가운데 성장하고 무서운 시련을 겪어야만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집에 합당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이다. 신자들이 이 하늘나라를 위하여 성숙되어져 가고 합당하여 가고 점차로 적합한 자가 되어 간다고 가르치는 것은 성경 어느 곳에도 없다.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많으신 긍휼대로...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 기업을 잇게 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이보다 더 명백한 말씀이 있겠는가? 또한 우리의 본문에서만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벧후 1:4)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기 위하여 무엇이 더 필요한가? 성경은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노예)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4:7)라고 분명히 말한다. 기업은 자녀가 생득권으로 상속한 것이다. 후사들이 기업을 받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말 자체가 모순이다. 우리가 기업을 받기에 합당한 것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데에만 그 근거가 있다.♡

만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거나 그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을 거꾸로 말하자면, 일단 어떤 사람이 거듭 났었다면 그는 지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거나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한 모든 논박은 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감사 기도인 다음 말씀으로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과거시제임)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 1:12)

중생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와 결혼하게 된다

중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와 실제로 하나가 되며 또한 그와 함께 한 후사가 된다. 신부의 유업은 신랑의 유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요 17:22)라고 자기 백성의 구속자가 말씀하신다. 이것은 특히 오늘날과 같이 거짓이 진리처럼 선전되는 시대에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

'말씀을 올바르게 구분' 한답시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가족을 잘못 구분하여 왔다. 어떤 세대주의자들은, 이 지상의 특권에는 차이가 있을 뿐만이 아니라 이 차이는 장차의 세상에서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며, 또 신약의 신자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보다 우월한 지위에서 그들을 낮추어 보게 될 것이고, 또 오순절 전에 살았던 성도들은 교회의 영광에 참예하거나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된" 기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금 교회 시대의 성도들이 그 이전 시대의 성도들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더 큰 특권을 누린다고 단언하는 것은 심각하고 용서할 수 없는 잘못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버지의 목적과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사역에 관한 성경의 근본적인 가르침과 모순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큰 구원의 근본적인 면들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로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사도 바울은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갈 3:7)라고 말한다. 이 말씀만으로도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 근본적으로는 결코 변하지 않았음이 충분히 증명된다.

하나님의 택함받은 모든 사람들은 그의 놀라운 은혜의 부요함을 함께 누리는 자들이며 "영광받기로 예비하신" 그릇들이고(롬 9:23),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신 자들이다"(롬 8:29).♡ 그리스도께서는 은혜의 택함받은 모든 자의 보증자로서 행동하셨기 때문에, 그가 그들 중의 어느 하나를 위해 행하신 공적은 모두를 위한 것이 된다.

모든 시대의 성도들은 다 같은 후사들이다. 이들 각자는 같은 아버지가 예정하셨고(요 6:37; 19:16, 27-33; 17:2, 9-12, 20-24), 또 같은 성령으로 중생되었으며(엡 4:4), 또 같은 구세주를 의지하고 신뢰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가 아닌 자들의 구원에 대하여 말한 적이 없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주시는 자들, 즉 아벨로부터 지상의 역사의 종말까지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은 또한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신다(롬 8:32).♡ 아브라함과 다윗 둘 다 믿음으로써 의롭게 되었음이 로마서 4장에 분명히 나타나 있는데, 완전한 칭의에 의해 얻는 자격보다 더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소망은 없다.♡

성령은 하나님의 가족 모두를 동일하게 새롭게 하신다. 즉 하늘의 기업을 누리고 그러한 자격이 있도록 그들을 낳으신다. 구약 시대에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영원한 기업의 약속"(히 9:15)을 받았다.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녀들은 하늘의 유업을 받아야 한다.

Arthur W. Pink 영적인 기도 p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