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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기도 31] 제6장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기도 (Effectual Fervent Prayer)

[영적인 기도 31] 제6장

En Hakkore 2024. 5. 2. 12:46

베드로전서 1:3-5(III)

거듭남의 근원이 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이 아버지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산 소망이 있도록 하신 것과 관계가 있음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존귀케 하신 일과 무덤으로부터 승리하여 나오신 일은 그의 백성들의 칭의뿐만 아니라 그들의 중생에 대한 정당한 근거였다. 신비롭게도 하나님의 뜻과 목적 안에서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그들의 보증자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셨을 때, 율법의 손에 있던 죽음으로부터 구원되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엡 2:4-6).

이 말씀은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라 교회가 그의 머리와 단체적으로 연합하였다는 것과 머리의 승리에 법적으로 참여한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함받은 자 모두는, 그들의 대표자가 부활했을 때 연합적으로 부활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알맞은 때에 거듭나야 한다.

또 그들은 합법적으로 살아났었기 때문에, 그들은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영적으로도 소생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어느 누구도 소생하지 못하였을 것이다(고전 15:17). 그러나 그가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들도 또한 소생할 것이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살아계시니 나 또한 살 것이로다
나를 위해 기꺼이 죽으신 자가 살아계시니
죽음의 사슬이 끊어졌도다
그가 나를 진토에서 (일으키셨으니)
예수는 나의 소망이요 의뢰자이시라

머리 안에 있는 생명은 반드시 몸의 지체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중생의 근본 원인이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마지막 원수를 정복하고 아버지께 가지 못하셨더라면(고전 15:26), 성령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 3:13, 14). 중생은 칭의와 같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공적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이것은 영이 새로와진 마음에서만 나올 수 있는 그리스도를 구원에 이르도록 믿는 믿음의 결과이다. 그는 자기 백성들을 은혜와 영광으로 일으키기 위하여 거룩한 성령을 값주고 사신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딛 3:5, 6).

하나님 아버지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죽음과 부활의 덕택으로 그리고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에게 중생시키시는 능력을 가진 성령을 부어주셨다. 성령은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시고, 그들에게 "소망이 넘치게"(롬 15:12, 13)하시기 위하여 그를 향하는 믿음을 불러일으키신다.

그의 재림시에 우리의 육체가 부활되는 것과같이, 우리가 죄책과 죄의 세력과 죄의 오염의 무덤에서 영적으로 구원받는 것은 사망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의 효과 때문이다. 그들이 거듭날 때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롬 8:29)이 되신다.

그리스도의 몸을 부활시킨 능력이 죄인을 영적으로 살리신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또한 우리의 중생에 대한 역동적 원형(dynamic prototype)이다. 그리스도의 몸을 일으킬 때 발휘된 능력이 똑같이 우리의 영혼을 영적인 죽음에서 회복시킬 때도 사용된다(엡 1:19, 20; 2:1). 주 예수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계 1:15)분이라고 불리운다.

왜냐하면 그가 무덤에서 나온 것은 그의 백성의 영혼의 중생과 마지막 날 그들의 몸이 일어날 것에 대한 하나의 증거일 뿐만 아니라 모본이기 때문이다. 이 유사성은 아주 명백하다. 탄생은 새 생명의 시작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에 그는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롬 8:3) 오셨다.

원죄의 오염에 물들지 아니하였고 또 실제적인 범죄의 오염으로 더럽혀지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에게 전가된 허물 때문에 연약함을 입으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능력과 영광 중에 요셉의 무덤에서 부활하였을 때 하늘 나라에 합당한 몸을 입으셨다.

이와같이 중생할 때 우리는 우리를 하늘에 합당하게 해 주는 본성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심으로써 그의 희생에 만족했다는 것을 증거하신 것과 같이(히 13:20),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우리가 하늘나라에 개인적으로 관계가 있음을 확신케 해주신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가 하나님의 아들됨(롬 1:4)에 대한 큰 증거였듯이, 신생은 우리의 양자됨에 대한 최초의 공개적 표명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의 영광과 높아지심으로 가는 첫 단계였듯이, 중생은 우리로 모든 영적 특권들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첫단계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기도 p100

● 에베소서 1장 19,20절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