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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기도 28] 제5장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기도 (Effectual Fervent Prayer)

[영적인 기도 28] 제5장

En Hakkore 2024. 5. 2. 12:42

베드로전서 1:3-5(II)

우리의 회개와 믿음보다도 하나님의 중생의 사역이 선행한다

이제 우리가 다루어 왔던 문제를 반대 순서로 되풀이하여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나기 전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에 대하여 영적으로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은혜의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 사람은 다소간 위선적인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

많으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진지하게 찬미하는 것은 더러운 옷 같은 자기의 의(사 64:6)를 혐오하며 이것에서 돌아서서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빌 3:3) 사람의 마음으로부터의 고백이다. 중생하지 않은 사람의 양심은 결코 평안을 주는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지 않았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영적 생명이 나누어지기 전에는 복음적 회개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으로 살리심을 받을 때(엡 2:1), 즉 거듭날 때(요 3:3)에야 비로소 우리는 구세주가 절대로 필요함을 깨닫게 되거나 실제로 그를 신뢰하게 된다.♡

이보다 훨씬 분명한 사실은, 인간의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므로(롬 8:7), 죄 중에 죽어 있으면 그는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순종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반역자들의 속임을 받거나 매수당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의 겉만 번지르르 한 것을 사랑하는 자는 어느 누구도 "이 땅의 나그네와 순례자"로서 행동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바로 이곳이 완전한 고향이기 때문이다.
                      
중생으로 말미암아 산 소망을 갖게 된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이것은 신생의 즉각적인 효과이며 열매이고, 중생한 자와 중생하지 않은 자를 구별시키는 특징적 표시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소망은 언제나 장차의 것과 관계가 있으며(롬 8:24, 25) 무엇인가 바람직한 것을 열심히 기대하는 것이고 실제로든 상상으로든 약속된 좋은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자기 행복을 증진시켜 줄 것이 증대됨으로 말미암아 자연인의 마음은 크게 부풀어 오르고 그는 계속 활기있게 살아간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꿈꾸었던 일들은 결코 실현되지 않으며 설사 그렇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 결과는 언제나 실망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의 참된 만족은 해 아래 있는 것들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몽에서 깨어난 영혼들이 인간이 만든 종교의 영향을 받아서, 저 세상에서의 자신들을 위해 훨씬 좋은 것을 확신하고 기대하려고 하는데, 이러한 기대 또한 헛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대는 육신적 인간의 육적 상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곡(邪曲)한 자의 거짓된 소망(욥 8:13),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경외하거나 그의 진노를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그의 긍휼만을 의지하는 자의 주제넘은 소망, 그리고 경건치 않은 신앙고백자의 죽은 소망은 이러한 소망을 지니는 자들을 비웃어 줄 뿐이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살아있으며 생생하다

중생하지 않은 자가 품는 기만적인 기대들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들은 거듭나게 되어 실제적이고 본질적인 소망을 지니게 된다. 이 소망은 그들의 마음을 채우고 그들의 의지와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서(그리하여 그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의 향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데),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객관적 약속에 근거를 두고 있다(이것은 4절에 요약되어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헬라어의 자오(zao, 살다)에서 온 형용사적 분사는, 사도행전 7:38에서는(여기 벧전 1:3에서처럼) '생생한'으로 번역되고 있기는 하지만, '살아있는'으로도 번역이 된다. 이 문맥에서는 둘 다 정확하고 알맞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튼튼하고 견고하다(히 6:19). 왜냐하면 이 소망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과 맹세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망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며(살후 2:16), 성령의 열매이고(롬 5:1-5), 믿음. 사랑과 분리될 수 없이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고전 13:13).♡

이것은 살리심을 받은 영혼이, 중생시에 받은 새 본성이나 은혜의 원리를 발휘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소망이 된다(딛 1:2). 참으로 영광스러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나기 전에는 우리들 중의 많은 사람들은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고"(히 10:27)있었고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히 2:15).

그리고 이것이 "살아 있는 소망"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 소망이 불멸의 것, 즉 무덤 저편의 것을 바라보고 그 이후까지도 지속되는 소망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그를 좌절시키기는 커녕 그는 오히려 죽음 저편의 결실을 소망하게 된다.

신자의 이 내적인 소망은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생생한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과 사랑처럼 이것은 그로 하여금 의무를 다하는 데 있어서 인내하며 견고하고 궁극적인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그의 영혼 안에 있는 적극적인 원리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 소망은 종교적인 형식주의자들과 공허한 신앙 고백자들의 죽은 소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소망은 결코 그들로 하여금 영적 활동을 하도록 고무시키지도 않으며 또한 전혀 신앙고백하지 않는 존경받는 세상 사람들과도 구분시켜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듭났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생생한 소망을 지니고서 그것을 행사함으로써이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출생으로 말미암아 영적 생명이 전달되며, 이 생명은, 영적인 것들을 바라고 영적인 대상들에게 만족을 구하고 영적인 의무들을 즐겁게 수행함으로써 명백히 나타난다. 그 다음으로 이 "생생한 소망"의 진실성과 그 실재성은 자기를 부인하게 하고 환난을 견디게 하는 데서 입증되는데 이것은 또한 인생의 폭풍 가운데서 "영혼의 닻"(히 6:19)으로서 역사해 준다.

이 소망은 또한 그 소유자를 깨끗케 함으로써 자명해진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이 소망은 또한 그 소유자를 격려하고 그로 하여금 활기를 띠게 한다는 점에서 "생생한 소망"이 된다. 왜냐하면 그가 복된 목표를 바라볼 때, 그는 끝까지 모든 시련을 견뎌낼 수 있도록 하는 용기와 영감을 얻기 때문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기도 p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