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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기도 23] 제4장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기도 (Effectual Fervent Prayer)

[영적인 기도 23] 제4장

En Hakkore 2024. 5. 2. 12:36

베드로전서 1:3-5(I)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베드로전서 1:3-5)

성령의 구원사역의 필수불가결한 징표가 되는 순종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택함을 입은 것이 효과가 있는 것은(살후 2:13) 성령의 은혜롭고 효과적인 사역으로 말미암아서이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이란 말은 성령의 중생케 하시는 사역을 나타내며,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소생하게 되고 기름부음 받으며 하나님께 봉헌되거나 하나님께로 구별되어진다.

거룩하게 하심이라는 말의 근본적인 뜻은 구별되어진다는 말이다. 신생함으로써 우리는 죄 가운데 죽어 있는 자들로부터 구별된 것이다. 여기 베드로전서 1:2에 나오는 "순종함"이란 말은 성령의 효과적인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복음의 권위있는 부르심에 순종하게 되고 이어서 복음의 교훈에 순종하게 되었다는 뜻이다(벧전 1:22; 롬 10:1,16을 보라).

택함을 받았다고 해서 방종해도 좋다는 것이 아니라 항상 거룩함과 선한 일(엡 1:4; 2:10)을 힘써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죄인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는 생활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진심으로 순종하게 하는 생활로 중생시킨다. 성령이 한 영혼을 성결케 할 때 그 영혼은 끝까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복음을 찬미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선택받았다는 것을 확증하는 것은 그의 순종함으로 말미암아서이다. 왜냐하면 예전에 그는 "불손종의 아들들"(엡 5:6)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의 순종의 새 생활로 말미암아 그는 그 안에 있는 성령의 초자연적인 사역의 증거를 갖추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뿌림과 피흘림(히 9:22) 사이의 차이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피흘림은 하나님에 대한 것인 데 반하여, 피뿌림은 신자들에게 죄를 용서하고 양심의 평안(히 9:13, 14; 10:22)을 얻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받으실 만한 것이 된다.♡

편지 전체를 주의깊게 읽어보면 이 성도들이 심한 고난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벧전 1:6,7; 2:19-21; 3:16; 4:12-16; 5:8,9), 유대인 신자들은(베드로가 본래 편지를 썼던 대상들의 대부분이 유대인이었음) 그들 육신의 형제들로 말미암아 압제를 받은 만큼 이방인들에게는 그렇게 심한 박해를 받지 않았다.

스데반의 경우에서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이 그들의 손아귀에서 고난받는 것(고후 11:24-26)을 통해서 생각해 볼 때 불신하는 유대인들이 나타내는 증오는 참으로 심하고 격렬하였다. 사도 바울은 그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박해를 견디어 냈던 히브리 형제들을 그들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는 것을 생각하라...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히 10:32-34).

이 사실을 명심함으로써 우리는 히브리서의 여러 세세한 부분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베드로가 왜 고난에 대해 그토록 많은 말을 하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자주언급했는가에 대한 이유가 좀더 분명해지게 된다.♡

그의 형제들은 그들을 담대하게 해줄 자극을 주는 강심제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영혼을 지탱해주고 믿음을 강하게 하고 희망을 불어 넣으며 굳셈과 선한 일을 하게 해주기 위해 하나님의 진리들 중 가장 적합한 말씀을 들어서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

이 기도는 송영이며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찬양의 표현이다

둘째로, 우리는 이 기도의 본질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이 기도의 본질은 찬양이다. 여기에서 사도는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찬미를 드리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우리의 필요를 아뢰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특권이며 의무이다. 게다가 특권은 언제나 의무에 수반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는 명령을 받는다. 그 말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권고의 말 다음에 나와 있다. 그런데 기뻐한다는 것은 기도의 감사의 표현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진정으로 깨닫는다면 우리는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자를 찬송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절에서 베드로는 몇몇의 지극히 주목할 만하고 포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외치고 있는데 이것은 그 자신과 그의 형제들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에 응답한 사도 베드로의 마음의 반향이요 반응이다.

이 특별한 송영은 또한 3절에서 자세히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자들에게 내려 주셨던 무한한 은혜에 대한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사의 표시로 간주되어야 한다. 사도는 지옥 형벌을 받아 마땅할 죄인들에게 시여된 영광스러운 축복에 관해 생각할 때 그의 마음 속에는 그 축복을 주시는 자에게로 향한 뜨거운 신앙심이 용솟음쳤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나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다.(눅 18:7) 즉, 고난에 처해 있을 때 밤낮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자주 찬양하고 그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그들이 자신들로 하여금 산 소망을 갖게 하여 주신 하나님의 풍성하신 자비에 대해 묵상하고 믿음으로 하늘에서 그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영광의 기업을 고대하고 이러한 것들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부터 흘러나온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들이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송영들은 거룩한 기쁨과 찬미드리는 경배를 표현한 것이다. 찬송하다라는 이 특별한 말에 대하여 엘리코트(Elicott)는 다음과 같이 가장 적절하게 해석을 하고  있다.

헬라어 말에서 이 말은 하나님께만 사용되는 말이다. 즉, 마가복음 14장과 로마서 9:5, 고린도후서 11:31에 나오는 말을 보라. 팔복 중에 나오는 "복 있는 자" 또는 "행복한 자"라는 말과 누가복음 1:28, 42에 나오는 우리 주님의 모친에 대한 "복 있는 자"라는 말과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베드로전서 1:3에서의 축복이란 단어는 항상 인격 속에 본래 지니고 있는 어떤 것으로 인하여 기인된 축복을 가리키는 말이고, 그 밖에 다른 곳에 나오는 축복이란 말은 이미 받은 축복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성경의 말이 참으로 엄밀하게 구별되어 있으며 정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Arthur W. Pink 영적인 기도 p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