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영적인 실천 163]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최상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163]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최상

En Hakkore 2024. 4. 30. 12:22

하나님의 최상의 복을 즐김(반대 의견들 5)

또 다른 독자들, 즉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의 독을 마신 사람들은 지금 여기서 논의되고 있는 주장들이 '신약과 구약을 혼동한 채 법칙적인 것에 너무 치중하고 있다'고 불평하면서 야곱, 다윗,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역사와는 다른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중대한 잘못이다.

신약과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통치는 서로 다른 다양성을 보인다기보다는 근본적으로 통일성을 보여주고 있다. 칼빈은 오래 전에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에서 이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 저서의 "신.구약의 유사성"과 "신.구약의 차이점"이란 두 개의 장(章)을 읽어보라.

모세 시대와 예수 그리스도 시대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은 '구원의 방법'이나 '하나님의 자녀들이 얻게 될 영적인 몫'이나 '하나님의 통치 원리' 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차이점은 모세 시대 사람들은 영적인 것들을 주로 모형이나 그림자로서 받은 데 비해 예수 그리스도 시대 사람들은 직접 실체로서 받은 데 있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지만 사실상 그것들 간에는 근본적인 통일성이 자리잡고 있으므로 표면적인 차이점들을 크게 확대하여 근본적인 통일성을 무시하고 부인하는 태도는 배격되어야 한다.

신약의 교훈이 구약의 교훈과 동일한 것이긴 하지만,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안다"(엡 6:8)는 말씀은 율법과 선지서의 개요이며 반복되는 교훈인 것이다.

신약과 구약에 내재하는 통일성은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한 것"(롬 15:4)이라는 하나님의 선언 속에 잘 나타나고 있다. 구약의 성도들을 대하시던 원리와 오늘 우리를 대하시는 원리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면 하나님의 역사로부터 우리가 '배울'수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배울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구약을 될 수 있는대로 조금 읽을 것이 나을 것이다. 그래야만 혼동하지 않 테니까 말이다.

사실 하나님의 통치 원리는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속성을 가지는데 그것은 어느 세대에나 똑같이 적용되는 '불변성'에 있다.♡ 모세 시대 이전의 배교한 천사들을 하늘에서 내어쫓으실 때나 홍수 전 세대를 멸망시키실 때나 그리고 오늘날에나 "의와 공평"(시 97:2)은 진정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오늘날의 성도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하시던 것과 똑같은 기초 위에서 대하고 계시다는 사실이 고린도전서 10:6에 명백히 밝혀져 있다. 여기서 성경은 하나님이 그들을 광야에서 몰살시키기 전에 그들이 누렸던 특권들을 묘사한 후,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가르친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그들의 죄 된 행위를 본받을 때 우리가 처하게 될 진노의 표본이며 우리가 명심해야 할 엄숙하고도 실제적인 경고가 된다는 것이다. 아니, 성경은 우리로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 오늘 우리 세대의 크나큰 축복은 우리의 의무를 경감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증가시키는 것이다.

특권이 크면 클수록 우리의 의무도 커진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한 두 달란트 받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남겨야 했던 것과 같다.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 10:28,29).

이 말씀이 명백하게 밝히고 있는 원리는 깊은 은혜의 빚을 더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의 의무 또한 커지며 그 의무를 감당하지 못할 때에는 그 죄도 커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시 130:4).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정욕을 제어하여 경박하게 움직이지 말고 주를 '경외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비를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은 죄를 향해 대담하지 않고 도리어 죄를 미워하는 마음을 깊이 가지게 되며 그것을 대항하여 싸우려는 열심을 품게 될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골 1:6) 사람들은 단지 신학적인 지식만을 가진 사람들과는 달리, 자기 행위를 조심하고 그 행위의 결과를 생각하며 그렇게 선하게 대해 주시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영화롭게 해드리고자 열심을 품고 애쓰게 될 것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