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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157]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최상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157]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최상

En Hakkore 2024. 4. 30. 12:04

하나님의 최상의 복을 즐김(하나님의 최상을 회복함 3)

"죄를 버리는 자." 우리의 죄를 '버린다'는 것은 자발적이고 필사적인 행위를 가리킨다. 죄를 버린다는 것은 죄를 미워하고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이며 의지로써 죄를 거부하는 것이고 죄가 우리 마음이나 생각에 거하는 것을 기뻐하거나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죄를 버린다는 것은  죄와의 관계를 끊는 것이며 다시는 죄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하나님의 은혜로써 애쓰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어리석음에 빠지게 하는 사람이나 함정으로부터 멀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우리를 무질서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이 노력이 없다면 우리는 이전의 아무 목적 없는 실패의 삶을 자꾸만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영적으로 침체되는데도 불구하고 악영향을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죄의 악영향을 예방하는 길은 죄의 악영향을 슬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우울증에 빠지게 하는 죄를 버리기로 결심하는 데 있다"(존 브라운).

영혼을 독살하는 모든 것을 완전히 파괴시켜야만 한다.♡ 그러나 성도가 즉시 자기 죄를 자복하고 버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때엔 '형통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은혜가 더 이상 자라지 않으며, 하나님의 미소도 그의 위에 머무르지 않게 될 것이다. 성령님은 슬퍼하시며 그의 영혼을 위해 준비하셨던 은혜로운 역사를 보류하실 것이므로 그의 '길'이 험난하게' 될 것이다.

다윗이 그러했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영적인 공급)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루시오니 내 진액(활력 혹은 신선함)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시 32:3,4). 죄는 우리 영혼의 생명력을 빨아먹는 악한 힘이 있다.

다윗이 자백하지 않을 때 그는 슬퍼해야 했다. 하나님의 손이 그를 치시므로 그는 하나님의 막대기 밑에서 신음하였다. 또한 그는 자기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자백하며 자기를 낮추기 전까지는 평안을 누릴 수가 없었다.

죄를 버리고 자백하는 행위 자체가 무슨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질서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과 동행할 때까지는 우리 죄를 눈감아 주시지 않으며 그의 자비를 유보하시는 것이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이 말씀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들의 죄 때문에 일시적으로 심판을 내리신다. 둘째로, 하나님의 채찍이 그들에게 임할 때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준다. 세째는 믿음의 고귀한 약속이다.

이제 이 말씀이 요구하는 바를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내 백성이 스스로 겸비하면"이라는 말씀은 고린도전서 11:31의 '우리가 우리를 살핀다'는 말씀과 비슷하다. 그러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징벌이 임한 상황이다. 레위기 26:41은 밝히 말씀하고 있다.

"만일... 그 죄악의 형벌을 순히 받으면." 이 말씀은 '도대체 내가 무엇을 했기에 이렇게 벌을 내리느냐'고 따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경하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스 9:13).

다윗은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시 119:75)라고 겸손히 말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배척하고 하나님편에 섰으며 자기의 불의함을 인정하였다.

영혼의 매를 맞고도 겸손해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자만과 완고함이 하나님을 향하는 모든 노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진심으로 '겸손하게' 하고, 둘째로 '기도한다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우리는 기껏해야 먼지구덩이에 거할 뿐이므로 사실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기도밖에는 없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결과는 무엇인가? 깨어지고 통회한 심령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거룩을 보여 주셔서 우리의 비열한 모습을 깨닫게 해 주신다. 자기의 비열한 모습 속에서 '겸손'을 배운 사람은 자기 죄를 자백하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믿고 그의 사죄와 회복을 소망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세째로, '내 얼굴을 구하라'는 말씀은 '기도하라'는 말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말씀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확고하심, 그리고 우리를 향한 그의 열심을 말해 준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입술의 경배를 받으실 리는 없다. 그분은 마음을 요구하신다.

우리는 우리가 괴롭혀 드렸던 그분과 얼굴을 맞대고 만나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에 대하여 변명을 받으실 분이 아니시며 우리 또한 변명해서는 안된다. 호세아 14:2,3에 하신 말씀은 바로 이 경우에 꼭 해당하는 말씀이다.

네째로 "그 악한 길(심판을 가져오게 했던 그 길)에서 떠나는 것"은 잠언 28:13의 우리 죄를 '버리는' 것과 똑같은 효력을 미친다. "네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여기 은혜로운 약속이 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조건을 주의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가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때에만 그 약속이 효력이 있다.

조건을 충족시킬 때까지 우리는 그 약속의 성취를 기대할 자격이 없다. 또한 복된 약속의 내용(범위)을 생각해 보라. 약속대로 하나님은 들으시며 죄를 사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즉, 하나님이시여,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극히 겸비하였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였으며 악한 길을 버렸나이다. 이제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제 땅을 고치소서. 그것이 나의 몸이든, 나의 재산이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든 간에 고치소서. 하나님의 채찍을 거두시고 하나님의 미소가 다시 내게 임하게 하소서. 믿음으로 이것을 구하라.♡

호세아 14:4에서부터 8절의 말씀을 주장하라!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 9:29)는 말씀은 이 시점에 매우 적절한 말씀이다. 하나님은 마음을 고귀하게 보시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이들을 놓치지 않으신다. 내가 겸손히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증하건대, 기적을 요청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루어 주신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특전을 누리며 살고 있는지!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