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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158]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최상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158]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최상

En Hakkore 2024. 4. 30. 12:19

하나님의 최상의 복을 즐김(하나님의 최상을 회복함 4)

'여호와 로프예카'(너를 치료하는 여호와, 출 15:26)라는 명칭은 '여호와 찌드케누'(여호와 우리의 의, 렘 23:6)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진정한 명칭이건만 그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는 너무도 적다. 그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 세상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며 인간인 병원의 의사들을 의지할 뿐이다.

오랫동안 교만하게 지내다가 하나님의 최상을 잃어버려 개인과 가정에 역경을 만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히 재발견하고 회복할 수 있는가? 다음의 은혜로운,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말씀을 생각해 볼 때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할 이가 어디 있겠는가?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횃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욜 2:25).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분은 "모든 은혜의 하나님"(벧전 5:10)이 아니신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방해할 자가 누구신가!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의로 말미암아"(롬 5:21) 역사하는 것이지 의(義)가 죄를 드러내시며 우리의 죄를 그냥 넘기시지 않는다. 또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의 믿음에 호소하는 것이므로 그 약속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어린 아이 같은 믿음으로 그 약속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사랑하는이여! 요엘서 1장 전체와 2장의 첫째 절부터 11절까지를 깊이 생각하여 보라. 이스라엘은 심하게 그리고 되풀이하여 죄를 지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혹독하게 때리셨다. 그러나 2:12의 말씀을 읽어 보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하나님의 재앙, 특히 네뚜기 재앙을 받은 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이 경우는 범국가적인 문제였으므로 하나님을 그들에게 명령하셨다.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라'. '성회를 선고하라'. 그리고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그러면서 하나님은 확언하신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또한 이렇게 약속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인하여 흡족하리라...내가 북편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리라...땅이여 두려워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라다."(욜 2:19, 20, 21)

그 뒤에 이런 은혜로운 말씀이 나온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늦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이러한 약속에 대해서 하나님 요구하시는 조건은 이 약속을 믿고 소망하라는 것이다.

사랑하는이여, 생각해 보라. 이 약속의 말씀이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만 기록되었겠는가? 우리는 사도가 다른 곳에서 말한 바와같이 주장할 수 있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우리도 위함이니"(롬 4:23,24). 옳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약속을 믿음으로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너희 믿음대로 대라"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면서, 이 말씀은 제임스 아미니우스(James Arminius)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칼빈주의 신앙을 가진 독자들에게 삼가 상기시키고자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주여, 우리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외쳐야 할 때가 있다면 그것은 요한일서 1:9을 하나님께 주장할 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최상을 완전히 회복하기 원하여 하나님을 바라보고 요엘 2:5의 말씀을 의지할 때에는 더욱 그렇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뛰는 소리는 병거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검불을 사르는 소리와도 같으며 강한 군사가 줄을 벌이고 싸우는 것 같으니"(요엘 2:5)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