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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154]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최상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154]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최상

En Hakkore 2024. 4. 29. 11:16

하나님의 최상의 복을 즐김(하나님의 최상을 잃어버림 9)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5절). 니느웨의 왕은 백성들에게 조서를 내렸다.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다.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그 다음에 우리는 이런 말씀을 읽게 된다.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날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10절). 여기에서 하나님이 그 뜻을 '돌이켰다'는 말은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 세우신 뜻을 바꾸셨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위가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들은 하나님이 경고하신 그 심판을 피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이방인의 회개와 개혁을 이처럼 선대하셨다면 그리스도께서는 회개하고 겸손해 하는 자기 백성을 그 얼마나 사랑할 것인가! 성도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정도가 아니라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라는 결정적인 복의 언약을 주신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이 말씀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하나님의 관용과 자비여! 우리가 범죄하는 그 순간에도 우리에게는 징계의 채찍을 피할 수 있는 길이 항상 열려져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의가 드러나 있다!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우리는 우리 죄에 대한 징계를 피해야만 한다. 왜 피해야 하는가? 우리에게는 더 이상 징계의 매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왜 필요 없는가? 그 이유는 우리에게 이미 징계의 효력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징계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가?

고집센 사람을 정신 차리게 만들어서 자기가 하나님을 거스려 반대했음을 깨닫게 하고 회개와 자복과 개혁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시정하도록 하시려는 것이 징계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우리에게 이러한 열매가 맺혀져 있다면 우리는 이미 "매를 순히 받은 것"이다(미 6:9).

우리에게 매의 목적은 이미 성취된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진심으로 숨김 없이 통회하는 마음으로 '살펴보았다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매는 필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조사하여 모든 불의한 일을 버리고 거룩한 길로 되돌아간다면 우리는 이미 매가 의도한 그 곳에 이르러 있는 셈이다. 그것도 아주 쉽고 빠르게 말이다.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이 말 속에는 성도가 자기를 살피는 일에 게으르며, 또 자기를 살피는 일에 대해서 저항감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 다음 절을 보면 그것을 더 잘 알 수 있다. 슬프다, 첫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여, 그들은 영적으로 침체되고 병들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살펴볼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들의 양심은 그들이 사소하게 여겼던 것들로부터 시달림을 받아 무감각해졌으며 그들의 행동은 매우 부주의하여서 재판장이신 예수님을 거스리고서는 그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타락과 멸망의 징표)이 얼룩얼룩할지라도 깨닫지 못하는도다"(호 7:9).

이처럼 그들이 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매를 때려서라도 그들을 깨워야 하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숨겨진 죄를 차마 보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처럼 형편없이 타락하지는 않았지만, 자기의 죄를 알면서도 이를 자백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왜 그들은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반항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들의 그 지긋지긋한 자만심 때문인 것이다! 이 경우에 하나님의 강하신 손은 그들을 끌어내리시고야 말 것이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고린도 교인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죄를 반복하고도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세속적'인데 빠져, 그들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발생하였지만 그들은 자기 자신을 살펴보지 아니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으며 마침내는 주의 만찬을 모독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주님은 가만히 계실 수 없어, 그들의 육신에 사망과 질병을 보내셨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라"는 말씀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그들의 결론은 뻔한 것이다. 즉 그들은 그들 자신을 살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에서는 성도가 자기 죄에서 돌이키면 하나님이 매를 거두시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죄를 짓고도 회개치 않고 계속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매를 드시는 것이다. 그러나 매를 드시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가 깃들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을 이들"이기 때문이다.

성도가 제멋대로 살아가면 그는 현세에서 매를 맞는다. 그러나 불신자는 영원한 죄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 죄는 반드시 '판단되어져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 판단하든 의로우신 재판장께서 판단하든, 현세에서 판단되든 미래에 판단되든, 반드시 판단되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스스로 우리 자신을 판단하고 하나님의 판단을 피하는 것이 얼마나 좋겠는가!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