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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141]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최상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141]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최상

En Hakkore 2024. 4. 29. 10:35

하나님의 최상의 복을 즐김(서론5)  

우리는 앞서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라는 시편 19:11의 말씀을 다룬 바 있다. 여기서 그 진술의 시제에 주의를 기울여 주기 바란다. '클 것이니이다'(shall be)가 아니고 '크니이다'(is so now)이다. 많은 다른 성경 구절들도 현세의 '보상'(reward)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 119:165). "의(義)[의로운 행위]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사 32:17). 시편 58:11의 증거도 동일하다.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

"의인(즉 의의 율법을 실천하는 사람)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시 92:12-15). 이 모든 구절들은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시며 또 그들을 축복하신다는 것을 명백히 증거하고 있다.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잠 11:31). "여호와께서 유다와 쟁변하시고 야곱의 소행대로 벌 주시며 그 소위대로 보응하시리라."(호 12:2)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은 하나님의 불변하는 통치 방식이다. 이 원리는 성경 전체에 걸쳐서 발언되고 또 조명된다. "저희가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호 10:12). "내가 보건대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욥 4:8).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잠 1:31).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잠 11:18). 우리 주님께서도 동일하게 가르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눅 28:29,30).

사도들도 동일한 것을 가르쳤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 9:6).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8). 오늘날 강단에서 이러한 구절들이 드물게 외쳐지고 있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이제 여기서 적지않게 혼신을 빚는 구절들, 즉 하나님이 후회하신다는 표현이 나오는 구절들을 풀이해 보자. 비록 사실이더라도, 그런 표현이 인간 언어를 채용하시는 하나님의 겸손을 보여준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못된다. 그렇지만 그 표현은, 하나님의 영원한 율례를 수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 여하에 따라 취급태도가 달라지는 하나님의 통치 방식을 수식하는 것이라도 말함으로써 난제는 제거된다.

하나님은 자신을 향한 인간의 태도 여하에 따라 무서운 심판을 보류하시거나 또는 죄로 인해 중단했던 복을 부어 주시거나 하신다.♡ 예레미야 18:8-10에 이 일반 원리가 매우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그들이나 보기에 약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하나님의 예정에 '만일'이란 말은 없지만, 인간의 책임과 관련하여서는 있다.♡ 그것은 필수적이다. 보상의 방도는 반드시 언급되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여러 나라를 향하여 선언하신 저주들은 그의 영원한 율례나 무오한 예언이 아니라 죄에 대한 그의 심각한 불쾌를 윤리적 차원에서 암시한 것이며, 그들이 개선하지 않을 경우 불가피하게 따라올 일들을 지엄하게 선언하는 것들이다.

위의 인용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는 기본적 도덕률을 제시해 주며, 또한 하나님은 언제나 순종과 의(義)를 중시하셔서 보상하시는 한편 불순종은 싫어하셔서 징계하신다(잠 14:34)는 것을 설명해 준다. 예레미야 18장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님은 인간 운명의 결정자가 아니라 책임 이행의 정도에 따라 현세에서 보상을 하는 상(賞) 분여자이며 또한 언제나 의인에게 복주시는 분이다.

같은 원리가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삼상 15:10,11). 이 말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그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왕됨을 폐하시고 그를 해임하신다는 뜻이다(26절).

이처럼 하나님의 통치 행위는 -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 인간의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님은 통치하심에 있어서 기계처럼 행동하시지 않고 때때로 의인을 혹독한 시련 속에 거둬두시는가 하면 악인을 푸른 월계수처럼 번성케 하시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부분적으로는'이라고 말했다. 만일 의인이 항상 눈에 보이게 보상을 받고 악인이 매번 징계를 받는다면 하나님의 공의에는 신앙의 훈련장이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심판날에 있을 일에 대해서도 육감 정도가 아니라 확실히 예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각 나라나 개인의 역사를 전체로서 보면 하나님의 통치 도덕은 현저히 명백하다. 역사 전체를 볼 때 죄를 지음으로써 상실자가 되고 성결함으로써 획득자가 된다는 것을 누구나 느끼게 된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