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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138]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최상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138]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최상

En Hakkore 2024. 4. 28. 13:41

하나님의 최상의 복을 즐김(서론2)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이 미래의 삶보다 현세의 삶에 대하여 훨씬 더 많이 언급하고 있으며, 또 영원한 축복만큼이나 현세의 지복(至福)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전자가 후자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이긴 해도 전자가 후자를 배척하지는 않는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서 우리를 만족케 못하신다면 내세에서도 만족케 하시지 못하리라. 사람들에게 지옥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들어가라고 말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열심 때문에 많은 복음 전도자들이 지상에서의 행동 지침에 대해 거의 언급조차 않으므로 아버지의 집에서 저택을 기업으로 받을 것을 확신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의 삶과 그들의 현안 문제인 전쟁 등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들이 비록 영원한 안식을 소유했다고 해도 그러한 태만은 그들에게 현재와 미래에 큰 손실을 가져다 줄 것이다.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바는 소위 '정통주의적 설교'와 노선을 달리한다. 신구약 성경은 동일하게 이 세상에서의 삶을 강조하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무수히 가르쳐 준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태도와 행동의 문제에 있어서 잘못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사람들 가운데조차도 국가와 개인, 그리고 선택된 자들과 유기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적절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성경구절들 중에 하나님께서 시간을 주장하신다고 묘사하는 구절들이 스무 개도 넘는다. 하나님의 예정을 묵상하는 것은 정말 복된 일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섭리하시는 원리들을 연구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영적인 일과 현세적인 일 모두에 있어서 하나님의 통치방식, 즉 이 세상에서 우리를 다루시는 방식은 어떤 독단적인 주권을 뛰어넘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와 그 행위의 결말 사이에 필연적인 관련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의(義)를 행하는 사람은 기뻐하시고 불의한 자들은 책망하신다.

하나님의 주권을 그의 모든 완전성을 가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또 하나님의 모든 행동들을 그의 주권적인 뜻의 단순한 실시라고 보는 것은 매우 심각한 실수이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고로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비롭게 또 의롭게 행동하신다고 말한다. 자비와 의(義)는 하나님의 통치방식의 주요 원리들이다. 자비는 주권적으로 베풀어진다(롬 9:18). 그러나 의(義)는 그렇지가 않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이 멈춰질 수 없듯이 그의 의(義)의 작동 또한 멈춰질 수 없다.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 하시나니"(시 11:7),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시 145:17),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시 97:2).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사 11:5), "왕의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으로 왕에게 부어 왕의 동류보다 승하게 하셨나이다"(시 45:7).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의(義) 사이에 균형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사람들을 다루는 하나님의 방식을 작동시키는 것은 바로 그의 의(義)이다. 그리고 미래의 그 날에 하나님은 사람들을 '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또 악을 벌주고 선을 보상하라고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도 의(義)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복주시고, 방종한 자들을 징계하신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