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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129]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의 권위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129]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의 권위

En Hakkore 2024. 4. 28. 13:35

제 10 장 복음적인 순종(5)

다음에 인용되는 글들은 지금 여기서 이야기되고 있는 사실들이 위험스런 새 사상이 아님을 입증하여 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자들 자신이 용납되었으므로 그들의 선행 또한 용납된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안목에 흠이 없고 완전하지는 못하더라도 그의 아들 안에서 그들을 바라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비록 많은 결함과 불완전함을 동반하기는 해도 그들의 신실한 행동을 기쁘게 인정하시고 또한 보상하신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중).

"나는 그것을 복음적 순종이라고 말하겠다. 그것이 율법이 요구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거나 또는 우리 마음을 움직여 마음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역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복음안에서 계시되었고, 우리 마음의 원리들을 작동시켜 끝까지 지속시키기 때문이다"(존 오웬).

완화된 새 언약에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그의 사랑과 자비로 인하여 하나님은 주어진 거룩함에 응답하는 그런 정도의 사랑과 순종을 인정하신다".(맨튼)

이상 인용된 글들은 비록 하나님에 의해 영감된 글들은 아니고,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절대권을 행사할 수는 없는 글이기는 해도, 성령에 의하여 깊이 깨닫고 쓰임받은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므로 우리가 진지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도 '아버지' 라고 부르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그 명령이 그리스도 안의 위대한 스승들을 경멸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율법폐기론자들이 아니며, 우리 시대에서 찾아보기 힘든 거룩한 조화를 지닌 들분이다.

하나님은 모든 이성적 피조물에게 완전한 사랑을 요구하시며, 어떤 환경하에서도 자신의 요구를 평가절하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지적했다. 모든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의 그 거룩한 요구에 찬성하지만, 그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함에 대해 깊이 슬퍼한다.

완화된 새 언약의 규정하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결함 투성이의 순종을 용납하시고 용인하신다. 왜냐하면 그들 속에 내주하는 부패성 때문에 아무리 갈망하고 노력해도 하나님의 완전한 표준에는 못미친다는 것을 잘 아시시 때문이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그의 명예를 조금도 손상받지 않으신다.

위에서 몇몇 청교도들의 글을 인용한 것은 - 얼마든지 더 인용할 수 있다 -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비금 이상하고 그릇된 교리에 빠져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떤 독자들은 마음놓고 받아들일 수 있는 보다 권위를 지닌 어떤 교훈을 요구하리라고 본다. 지금부터 그것을 살펴보자.

  창세기 26:5에 보면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선언을 볼 수 있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그렇지만 아브라함이 완벽하게 순종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역시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용인하셨다. 그리고 문맥이 보여주는 대로 그는 보상을 받았다.  신실한 순종은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하나님께 인정받는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행동을 일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행할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럴 경우 성도들에 관한 많은 성경의 진술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 진술들은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불완전하긴 하나 마음에서 우러나온 순종들을 인정하시며, 그들이 행한 것 이상으로 그들을 높이 평가하신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욥을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평가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상 욥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결함으로 둘러싸인' 사람이었음을 욥기 전체를 통하여 알 수 있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