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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122]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보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122]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보

En Hakkore 2024. 4. 26. 12:06

제 8 장 주의 일(5)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지워진 의무, 즉 죄에 대항하여 싸우며 시험을 이겨내며, 어린 양의 피로 마귀를 이기며, 하나님께 거룩한 열매를 맺어드리는 일을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한다는 관점에서 듣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하나가 되었다는 확신 위에 '견고해야'만 한다.

주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에 있어서 '흔들리지 말아야'만 한다. '주의 일에 항상 힘쓴다'는 말의 헬라어는 양보다 질의 개념, 일의 다수성보다는 진보적인 향상의 개념을 전하고 있다. 즉, 진정한 경건에 있어서 계속 진보하는 것을 의미한다(매튜 헨리).

이는 그 일에 있어서 탁월하라는 것이다. 현재의 진보와 성과에 만족하여 쉬지 말고, 매일 어제보다 더 낫기위해 노력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평생토록 금욕하고 성화하는 일을 '주의 일'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고 하나님이 힘을 주셔야만 그 일을 수행할 수 있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이 일이 매우 좋은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 의무는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믿음으로 이해하고 그에 따라 감사하는 삶을 살 때에만 제대로 잘 수행될 수 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복음적인 거룩을 가질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사망의 '쏘는 것'을 제거해 주시고 율법으로부터 '죄의 권능'을 제거해 주셨다는 사실을 진리로 확신하기까지는 복음적인 순종을 할 수가 없다.

그때에만 성도가 하나님을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수 있다. 즉 두려우니까 혹은 무엇을 얻기 위해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감사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주님 안에서 자기의 칭의를 위해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처럼, 주님 안에서 자기의 삶과 전투를 위한 '힘'(사 45:22)을 얻는다는 사실을 성도는 그때 진정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이처럼 '그러므로'라는 말씀은 의무가 본문에 말씀하신 무한한 복의 산물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뿐만 아니라 그 의무, 즉 큰 특권이라고 보아야만 할 그 의무를 수행케 하는 강력한 원동력을 공급해 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으니"(3절)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20절) 또한 우리가 "영광 가운데 일으킴을 받아" "하늘에 속한 자의 거룩한 삶으로 나타내도록 하자.

이 의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두번째 원동력이 되는 것이 본문 마지막 부분에 나오고 있다.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하나님은 인간에게 빚을 지지 않으실 것이다. 모든 진실한 감사의 노력들은 비록 거기에 부족함이 있다손 치더라도 하나님이 가치있게 보시며 보상해 주신다.

"하나님의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삼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 6:10). 하나님의 뜻대로 순수하게 노력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미소를 지어 보이시며, 마음에 기쁨과 평화를 주시며 마침내는 '잘했어'라고 말씀해 주신다는 사실을 그리스도인은 완전히 확신해야 한다. "그의 명령을 지키면 큰 상이 있다." 모세가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이것이었다(히 11:24-26).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수고'는 '일'보다 강한 말로서 피곤할 때까지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안에서'라는 말은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과 연합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한 수고는 공연히 힘만 낭비하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반드시 그 결과가 성도에게 나타날 것이다.

성도는 아무리 노력하며 자기 정욕을 금욕하고 그 은혜를 개발해도 도무지 성과가 없음을 느낀다. 그는 죄를 대항하고 거룩한 열매를 맺는 일에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완전히 실패하곤 하는 것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가 보는 대로 또 듣는 대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음을 보시며 신실함을 받으시는 하나님은 다르게 보신다.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믿음의 분량에 따라 이 확신이 바로 우리의 확신이다. 상급에 대한 이 소망이 확실하면 확실할수록 죄를 금욕하고 거룩함을 실천하는 우리의 노력은 더욱 더 확고해질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확실히 말씀하셨다. '수고'는 헛되지 않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