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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119]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보

En Hakkore 2024. 4. 26. 11:46

제 8 장 주의 일(2)

이상의 관점에서 볼 때, 지식보다는 열심만 가진 자들이 고린도전서 15:58을 아주 중요시하면서 그 구절을 자기들의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은 조금도 놀랄 만한 일이 되지 못한다.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하고 소위 '영적인 사역'에 참가하며, 소위 '그리스도를 위한 간증' 집회에 참석하고(직접적으로 성도를 가르치고 훈계하는) 서신서에도 권하지 않은 사업들을 벌리는 그들의 활동들은 '주를 위한 활동' 혹은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 등으로 명명되고 있다.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맡기신 일들은 사실 그와는 맞지 않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부지런히 그 마음을 지키는 것이요, 정욕을 제어하는 것이며, 그들에게 주신 은혜를 개발하며(골 3:5, 12), 육체와 영의 온갖 더러움으로부터 자신을 깨끗케 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거룩을 이루고(고후 7:1), 그들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아름다우신 그의 덕을 선전"하는 것이다.(벧전 2:9).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5:48에서 말하는 '주의 일'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흔히 알려 온 해석이 근거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는 다른 구절을 참고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첫째로 이 말씀은 특별히 복음의 사역자나 '그리스도의 사역자'에게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도 하신 말씀이다.

둘째로, 여기서 명령하고 계시는 주의 일은 우리가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소위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의 개념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것이다. 만일 여기서 주의 일이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의 개념을 가졌다면 '열심히 그리고 후퇴하지 말고' 등의 부사가 더 적당했을 것이다.

세째로, '항상 힘쓰라'는 표현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의무수행에는 쉼이 없어야 한다. 아마 '영적인 사역'에 가장 열광적으로 참가하는 사람일지라도 이 말씀에는 자신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지는 선하지만 잘못 인도되고 있는 오늘날의 기독계는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바라거나 간구하는 바가 아니라) 앎이니라"는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문법적으로 볼 때 '주의 일'은 주님이 행하시는 일, 혹은 주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일을 의미한다. 주님께서 그들을 이 일에 부르셨다는 사실을 볼 때 후자가 적당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요 6:28)라는 질문을 받을셨을 때(이 질문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 주님은 대답하셨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명하신 바요(요일 3:23),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일을 총괄적으로 말하면 무엇입니까?라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15:58이 그것을 요약해서 답변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총괄적으로 지적한다면 그것은 '주의 일'에 항상 힘쓰는 것이다. "여호와의 도"(창 18:19)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행로인 것처럼, '주의 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다. 대부분의 잘못된 해석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현대의 우리는 본문의 배경이나 문맥을 무시했고 '그러므로'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위대한 부활의 장이다. 15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그리스도 자신의 부활(1-11절) 둘째, 주님의 부활은 그의 모든 백성에게 '생명의 부활'을 확보시켜 주셨다(20-28절), 세째로, 부활한 몸의 특성(42-54절) 등이다. 이렇게 구분하는 중에 간격이 생긴 것은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에 대한 반박과 답변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이 부활의 장을 소위 '그리스도인의 봉사' 문제로 끝맺는다는 것은 앞 구절의 문맥에 전적으로 걸맞지 않는 것이다. 사도는 그것보다 승리의 감사(55-57절)와 그에 따른 도덕적인 추론으로 부활에 대한 교훈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여기에 성경의 근본적인 특성이 보여지고 있다.

즉, 교리적 선언과 도덕적 요구는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자는 후자의 근거가 된다. 먼저 그리스도인의 특권을 설명하고 그 후에 따른 의무를 지적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을 설명하셨다.

성령님은 55-58절에서 그것을 실제적으로 현실에 적용시키고 계시다. 교리는 의무와 직결된다. 하나님의 약속을 보든 교훈을 보든 '현재의 삶'과 '내세의 삶'은 분리되지 않고 있다. 모든 진리는 우리의 매일매일의 삶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주어졌다.

우리는 성경을 머리로만 믿어서는 안된다. 즉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특성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42~54절에 나타난 그렇게도 복된 진리는 성도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하며(55-57절) 그에 따라 성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기쁘시게 하기 위해 최대한 부지런히 노력하게 된다(58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57절). 이 말씀은 믿음의 말씀이다. 믿음은 아직 미래에 속한 일을 현재의 것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구절은 이 58절의 소망의 말씀이 우리에게 미치는 변화의 영향력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마지막 구절은 그 앞절의 소망에 수반되는 의무를 말해주는 것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