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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127] 여리고성에서 얻은 승리(수 6:1-27)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127] 여리고성에서 얻은 승리(수 6:1-27)

En Hakkore 2024. 4. 24. 06:1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수 6:2).

정말로 복된 일이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주께서 그분의 종에게 찾아오셔서 그 전쟁의 완전한 승리를 확신하게 해 주시다니요!

그러나 이러한 자비로운 역사 바로 직전에 있었던 일을 잊지 말도록 하자. 이 두 사건 사이에는 불가분리의 도덕적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 자신과 제사장들과 온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뜻에 모범적으로 순종했고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극히 중요시한다는 것을 드러내 보였다. 곧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킨 것이 그것이었다.❤️‍🩹

언제나 하나님과 우리의 영혼이 올바른 관계에 있을 때에 자유로이 우리를 만나 주시는 것이 그분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근심하시지 않는 상태로 성도가운데 임재하실 때에 항상 일어나는 또 다른 효과를 거기서 실례로 본 것이다.

외부의 사람들은 깜짝 놀라 공포에 떨게 하시는 것은 물론, 내부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과의 교통이 보장된다. 이것을 이따금씩 비정상적으로 체험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그것을 정상적이고 일방적으로 체험해야 마땅하다. 예수께서도 이렇게 선언하신 바 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분을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위에서 우리는 여리고 성이 "굳게 닫힌" 현실이 믿음에게는 도전이었고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에 따라 행하신다는 점을 말씀한 바 있다. 그러나 믿음이 근거할 토대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여기서 그 한 가지가 베풀어졌다.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라는 말씀은 교훈적이요 강한 의미를 담고 있다. "보라"는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의 눈으로 사물을 보라는 명확한 요청이다.

이 장애물을 육신적인 이성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마치 홍해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다음의 말씀과 같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 아멘!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출 14:15)에 믿음과 순종으로 응답한 후에야 비로소 그 "구원"을 외형적으로 볼 수 있었다.

육신의 눈에 보이도록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하나님의 약속하신 그 구원을 믿음의 눈으로 먼저 보아야 했던 것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이다.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사랑하는이여!
전에 "듣기만" 했던 그 복되신 분을 이제 그렇게 "뵈었"(요1 42:5)는가?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았는가?(히 11:27).
죄와 사망을 이기는 여러분의 최종적이며 완전한 승리를 보았는가?
여러분의 구속자께서 여러분을 위해 예비하러 가신 그 곳을 보셨는가?

믿음이란 바로 이것이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