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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125] 여리고성에서 얻은 승리(수 6:1-27)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125] 여리고성에서 얻은 승리(수 6:1-27)

En Hakkore 2024. 4. 24. 06:06

앞의 논고에서 말씀한 바와 같이 여호수아서의 두 번째 주요 단락이 5:13에서 시작되며(이 단락은 가나안 정복의 주제를 다룬다). 따라서 그 처음 시작하는 절들을 더욱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거기서 묘사되는 사건은 다음 여섯 장에 걸쳐 이어지는 내용의 서론일 뿐 아니라, 그 내용을 올바로 해석하는 열쇠를 제공하기도 한다.

여호와의 사자가 불타는 가시떨기 사이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것은 그저 그의 마음을 강하게 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고, 그 당시 "쇠 풀무 불"(신 4:20) "고난의 풀무 불"(사 48:10) 가운데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었고, 또한 여호와께서 친히 그런 처지에 있는 그분의 백성들과 함께 계심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사 63:9, 참조; 마 25:36; 행 9:11).

그러나 여호수아 5:13-15에서는 더 이상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고난을 당하시는 모습이 아니라 그들의 군대 장관으로 우뚝 서셔서 싸움에서 그들을 지휘하시고 이끄시는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이는 그 전쟁이 그저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도우심을 구하여 치러내야 할 그들의 전쟁이 아니라 여호와 자신의 전쟁이요 이스라엘은 그의 "만군" 중에 소속된 일개 병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암시였다.

이스라엘의 전쟁들을 가리켜 "여호와의 전쟁"이라 명확히 부르고 있다(민 21:14).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을 궤멸시킨 일은 사사로운 복수가 결코, 아니었고 신적인 복수였다. 그들의 악행들이 이제 "가득 찼기" 때문이었다(창 15:16; 레 18:25-28).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더한 것이 개입되어 있었다. 성경을 성경과 조심스럽게 비교해 보기만 해도 표면 뒤에서 진짜로 일어난 일을 발견할 수가 있다. 가나안 족속들이 그들의 고향에서 쫓겨난 일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가질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편에서 그것이 결코, 불의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가증스런 일들을 지속적으로 자행하여 이제는 그들을 몰살시키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남아 있지 않았으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것일 뿐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적인 면을 뛰어 넘어서 "여호와의 전쟁"이라는 표현에 비추어 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전쟁이 과연 여호와의 전쟁이었으니 말이다. 양쪽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던 것은 그저 인간의 군대만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군대와 지옥의 군대가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친히 사탄과 그의 졸개들을 상대로 전쟁에 돌입하고 계셨던 것이다.

가나안 족속은 각종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들과 더불어 우상 숭배와 점술에 빠져있었으며, 모세가 선언한대로,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는 것"이었다(신 18:9-14).

사도의 말씀처럼,"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다(고전 10:20).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기서 어둠의 권세들을 향해 전쟁을 일으키고 계신 것이요, 또한 홍해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대로 아무도 그분을 대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주제는 분명 미스터리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에 대해 충족한 빛을 밝혀주므로, 그 진면목을 감지할 수가 있다.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나 배도(背道)하면, 그는 마귀의 포로가 된 것이요, 그리스도께서 종노릇하는 그분의 백성들을 구속하기 위해 오셨을 때에 그는 먼저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자를 이기셔야 했다.

그리스도의 싸움은 그분을 미워한 사람들과의 싸움이 아니었고, 이 세상 임금(바로 "유다에게 들어가" 그분을 움직여 그 사악한 일을 행하게 한 사탄)과의 싸움이었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키고 있었고 그 소유가 안전하게 있었다.

그런데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분을 굴복시키고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나"(눅 11:21-22, 또한, 참조, 사 53:12).

곧 "죽음을 통해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히 2:14),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신 것"이다(골 2:15).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군사들 역시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 이유는 바로 다음과 같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1-12).

이런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 어찌 그리 적은지 모른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284

♥ 이사야 63장 9절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 마태복음 25장 36절.
"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