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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94]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보

En Hakkore 2024. 4. 24. 11:04

제 5장 졸고 있는 성도들 7

3)은혜 받지 못한 신앙인과 친분이 깊은 것이 그 원인이다.

지혜로운 처녀들은 미련한 처녀들과 너무 친밀하게 교제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이는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헬라어로 동사형은 '사귀다'. 행 24:26)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고전 15:33)라는 말씀을 볼 때 확실하다. 그 말씀 바로 다음에는 "개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는 그리스도가 없는 이들과 친할 때 그 결과가 무기력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선보다 악을 받아들이기가 더 쉽다. 우리는 서로 질병을 전할 수는 있지만 건강을 전하지는 않는다. 사악한 사람과 대하를 함으로써 그 사악한 사람에게 선을 행하도록 자극해 주기보다는 그 사악을 본받기가 더 쉬운 것이다.

하나님께 깨어 있으려는 사람, 자기 영혼을 구하기 원하는 사람은 악한 동료들을 떨쳐버려야 한다"(맨튼). 시편 119:115을 보라.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크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불신자가 아니라 게으르고 부주의하는 성도인 것이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실제 행동으로)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5).

4)초기 단계의 위험에 주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잠들기 전에 '졸았다'. 영적인 타락의 초기 단계에 주의해야 할 것을 강하게, 그리고 엄숙히 경고하는 말씀이다. 우리 영혼을 무기력 상태에 그대로 내버려주면 우리는 곧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다. 나태함과 부주의의 계단을 한 계단 내려가면 곧 또 한 계단을 내려가게 된다.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잠 19:15). 한번 우리의 열심이 식어지고 우리의 사랑이 냉각되면, 우리는 주의력을 잃게 되고 무기력해진다. 주의 일을 할 때 싸늘하기만 한 영식주의와 싸우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완전히 그 일을 놓게 된다. 모든 넘어짐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죄는 마음이 굳어지게 하기 위해 마음을 무디게 한다. 만일 우리가 주의하여 신사답게 영혼의 싸움을 싸우지 않는다면, 우리의 양심은 냉담해질 것이다. "다윗, 그는 자기가 간음과 살인의 죄에 빠졌을 때, 마치 기절한 사람과도 같았다....우리는 항상 서서 경게해야 한다. 우리를 마침내는 무너뜨릴 시험의 초기 단계를 놓쳐버리면 엄청난 불행을 당하게 마련이다."(맨튼)

이 비유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우리는 다른 여러 성경 구절을 통해 잠들게 되는 원인들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예를 들면 "내 눈을 돌이켜 하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시 119:37)와 같은 말씀이다. 이 말씀을 통해 볼 때, 세상의 것들에 부당하게 심취하는 것은 우리 영혼을 사망케 하는 효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기 스스로에게 세속적인 허상레 대한 자유를 허락하는 것보다 신자의 감정을 무력하게 하는 것은 없다. 다시 한번 말하겠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고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 21:34-36).

탐심은 우리 몸의 감각을 둔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까지도 나태하게 하여 "우리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감당해야 할(시 103:!) 영적인 의무를 감당하지 못하게 한다. 감정을 메마르게 하고 이해력을 없게ㅔ 하며 주의를 빼앗아가는 영적인 게으름도 마찬가지이다.

베드로전서 5:8의 "깨어라"라는 말씀 앞에 "근신하라"는 말씀이 있음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근신한다는 것은 과욕으로부터 자유하는 것, 특별히 이생의 합법적인 즐거움을 작게 누리는 것이다. 모든 형태의 과욕은 게으름을 낳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깨어있기 위해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한다(고전 9:25)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