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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66] 그리스도인의 출발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66] 그리스도인의 출발

En Hakkore 2024. 4. 20. 10:59

6. 타락의 회복(11)

만일 위대한 변화가 타락시에 일어난 일의 회복이라면, 회복순서는 필연적으로 역순이어야 한다. 먼저, 하나님과의 원래의 관계가 회복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영적 연합과 교제의 관계이다.

그런데 이 일은 그의 형상, 즉 '의(義)와 진리의 거룩함'과 그의 지고한 완전성에 대한 구원에 이르는 경험적인 지식으로 새롭게 됨으로써만 가능하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 영혼이 갱신되고 도덕적으로 순결해져야만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이 청결"(마 5:8)한 자만이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즉 의로우신 여호와, 우리의 영원하신 기업으로 볼 수 있기 떄문이다. 그럴 때에야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 마음 속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고 올바른 위치를 점유하게 된다. 즉 그것의 권위를 되찾고, 영성을 높이 평가받으며, 그것의 거룩하고 정당한 요구가 우리의 분명한 목표로 대두된다.

하나님께 대해 올바른 태도를 갖게 될 때까지, 그 분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까지, 그리고 그의 율법을 우리 삶의 규칙과 지도자로 삼을 때까지는 지나친 죄성과 죄의 짐을 볼 수 없으므로 죄를 대항한다거나 슬퍼할 수 없다.

만일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사단의 권세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참으로 애통해 할 때 하나님의 원수의 유혹은 우리에게 매력적인 일이 되기보다는 역겨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위대한 변화가 성령의 단 한 번의 행위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쳐서 완성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해야 하겠다. 그것은 중생시에 시작하여 성화과정에서 계속되어 마침내 영화시에 절정에 다다른다.

따라서 중생은 단지 타락시에 일어난 일의 회복의 시작에 불과하다. 중생을 신적인 출생으로 부르는 사실은 즉시 그것이 영적인 생명의 시작이라는 것을 암시하며, 또 영적 생명이 성장해야 하며 진보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암시한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이 말씀은 '출생'이 포함하고 있는 바에 관한 명백한 선언이며 축복된 보장이다.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이 말씀도 유사한 진술이다.

우리가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from) 영광에(to)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4:16)라는 말씀은 우리엑게 우리 영혼 내부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사역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데, 그것은 위대한 변화가 조금씩 계속되어 마침네 완성된다는 것이다. 중생시에 시작된 변화는 성화과정 동안 우리를 인도하며, 또 은혜 가운데서 성장케 한다.

만일 독자들이 성화과정에서 나타나는 위대한 변화의 진행과정에 대해 좀더 상세한 분석과 묘사를 요구한다면 다음의 사실들을 묘사함으로써 답변을 대신하겠다.

첫째, 신자들로 하여금'하나님에 관한 지식' 을 자라ㅏ가도록 돕는 이해의 빛에 의하여 하나님의 의지에 관해 보다 명확히, 보다 충만히 인식하게 된다.

둘째, 마음을 순화하고 고양함으로써 성령께서는 신자들로 하여금 위의 것을 찾도록 하시며, 또한 그들의 마음을 거룩한 목표에 고정시키신다.

세째, 의지를 수선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쁘신 뜻을 따라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뜻과 일치하도록 역사하신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를 단지 자동기계로 취급하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도덕적 존재로 대우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빛(illumination)을 찾아야 할 의무가 있고, 동시에 기도하면서 그의 말씀을 연구할 의무가 있다. 또한 말씀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도로 끊임없는 묵상을 해야 하며, 우리 마음을 신령한 일들에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우리를 방해하는 것들은 피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영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라면 어떤 방법이라도 사용해야 한다. 그러헤 할 때,

네째, 그 과정 속에서 우리 삶 교정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중생이란 각 개인에게 새로운 성질이나 원리가 전달되는 것이며, 기존의 요소들이 다 떠나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들이 그의 잘못을 증거할 것이다. 거듭난 것은 그 사람 자신이며 새로와진 것은 전 영혼이다.

따라서 그의 모든 기능들과 능력들은 갱신되었고 풍성해졌다.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변하지 않았다면 그에게 일어난 은혜의 이적을 어떻게 복스런 변화, 즉 '위대한 변화' - 참되고, 근본적이고, 완벽한 변화 -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 변화로 말미암아 그의 지각(전에는 무지와 오류와 편견으로 어두웠던)이 이제 영의 눈을 뜨게 되었으며, 그의 마음(전에는 이 땅의 일들에 고정되었던) 이 이제는 천상의 영원한 대상들에 고정되었으며, 그의 의지(지금까지 죄의 노예가 되어 "의에 대하여(from)" 자유하였으나(롬 6:20)가 이제는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죄에게서(from sin) 해방"(롬 6:18) 되었다.

우리가 보통 영혼의 '도덕적 순결'을 말할 때 마음에 두는 것은 영광스러운 변형, 즉 초자연적 변화이다.

타락이 인간 존재 내부에 죄의 원리를 도입하여 하나님을 향해 그의 영혼을 죽게 하였듯이 - 죽음은 죄의 삯이다 - 타락의 회복시에도 인간 영혼에 성결의 원리가 들어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하여 영적으로 살게끔 해주었다.

또 죄의 도입으로 영혼이 모든 기능들이 부패하였던 것처럼 성결의 원리의 이식으로 모든 기능들이 소생되었고 순화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타락으로 그의 본래적인 삼부(tripartite)의 어떤 부분도 상실하지 않았으며, 그것의 모든 기능들도 타락하지 않았다.

다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것들을 사용할 힘(power)을 상실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완전히 죄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 부패하였기 때문이다. 또 거듭 말하지만 인간은 중생함으로 그의 본래적인 구조 위에 어떤 것이 더 첨가되거나, 어떤 새로운 기능이 새로 부여되거나 하지 하지 않았다.

다만 이제 어느 정도 하나님께서 봉사하는 일에 그 기능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교제를 계속 유지하는 한, 그것들이 은혜의 통치 아래 있으면서 성령의 새롭게 하심에 의해 힘을 공급받고 고상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