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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67] 그리스도인의 출발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67] 그리스도인의 출발

En Hakkore 2024. 4. 22. 11:02

제 3장 위대한 변화

7. 결론(1)

정직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내부에 은혜의 이적이 일어났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 참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또 자신의 모든 것들이 전과 여전한 것을 발견할 것이며, 심지어 이전보다 더욱 약한 모습도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더 강한 반대의 일어남, 더 자주 머리를 치켜드는 교만, 더욱 강퍅한 마음, 더욱 부패한 생각 등, 그런데 내주하는 부패성에 대한 근심 그 자체가 바로 위대한 변화의 영향이며 증거이다. 그것은 그 사람이 이전엔 보지 못하고 무감각했던 죄악들을 이제는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다는 증거이다.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신앙의 연약함과 마음의 냉랭함, 그리고 자아의 뒤죽박죽 등에 대해 괴로와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향해 죽었다는 한 당신은 당신 자신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그런 일들이 당신을 깊이 휘저어 놓는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에 대해 당신은 애통해 한다면 당신은 전과 달라진 것이 분명하지 않는가?

그러나 정직한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을 것이다. 초자연적인 변화가 내 마음에 일어났다면 어떻게 그런 무서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나의 순결한 마음 속에 더러운 죄악의 바다가 자리잡고 있다니!

사랑하는 형제여, 그 더러움은 당신이 출생시부터 갖고 있는 것이다. 다만 중생한 후에야 그것의 존재를 보다 뚜렷이 인식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순결한 마음이란 모든 죄가 제거된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의 역사 속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마음은 완전히 순결해지지 않는다. 지각도 부분적으로만 밝아지듯(많은 무지와 오류를 여전히 범한다), 중생시에 마음도 단지 부분적으로만 깨끗해진다. 사도행전 15:9을 잘 관찰해 보라.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셨다(purified)"가 아니라 "깨끗이 하사(purifying), 즉 계속되는 과정이다. 깨끗한 마음은 '거룩한 아름다움(美)'을 사랑하는 마음이며, 거룩함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불결한 죄를 슬퍼하고 혐오한다면 - 마치 소돔성에 거주하던 롯(Lot)이 거기서 보고 듣는 것으로 "그의 의로운 영혼이 고통스러워"했던 것처럼 - 나는 순결한 마음을 소유한 것이 분명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두 '마음' - 즉 하나는 순결하고 하나는 불결한-을 소유했다고 결론을 내려야 하지 않는가?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적절한 답변은 성경에서 '마음(heart)이란 용어가 사용되는 용법을 연구함으로써 얻어지리라 생각한다.

마음은 "생각"(mind, 삼상 2:35; 히 8:10)과 "성품"(soul, 신 6:5)과 다르며 감정(affections)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마음은 온전한 속 사람(the whole inner man)으로 언급된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서도 마음을 지적 기능의 좌소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여...마음을 썼으나"(전 1:17). 즉, 내가 탐구하고자 생각을 기울었으나 그리고 보다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의미에서 생각해 볼 때 마음은 신체에 거주하는 어떤 것을 함의한다.

"성경에서 마음은 매우 다양하게 쓰인다. 때론 생각이나 지각으로, 때론 감정이나 양심으로,... 그러나 보통은 인간의 전 영혼과 그것의 모든 기능의 의미한다"(J. Owen).

다음의 구절들을 통해 우리는 '마음'이 몸과 구별되는 그 사람 자신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보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내가 묵도하기를 마치지 못하여"(Before I am had spoken in my heart, 창 24:45)는 분명히 '내속으로'(within myself)를 의미한다. "에서가 ...심중에 이르기를". 이것은 그가 결심한 것을 의마한다(창 27:41).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삼상 1:13),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동기)과 내 마음을 연단하소서" - 나의 속 사람(시 26:2). "내 마음을 다하여(나의 전체 속 사람으로) 주를 찾았나이다". 신약에 와서 '정신'(mind)은 종종 같은 의미로 쓰인다.

로마서 12:2에서 핫지(C. Hodge)가 지적한대로, "누스(nous)라는 단어(마음)가 사용되었는데, 신약의 다른 부분에서도 자주 쓰인 단어이다(롬 1:28; 엡 4:17,23; 골 2:18 등). 이 모든 유사한 경우에 있어서 그것은 마음과 다를 바가 없이 쓰였다.

즉 넓은 의미에서 영혼 전체(the whole soul)를 뜻한다." 이처럼 보통 '마음은 영혼 전체를 나타내먀, "속사람." "마음에 숨은 사람"(벧전 3:4), 곧 하나님께서 언제나 살피시는 마음(삼상 16:7)을 말한다.

그런데 자연인의 '마음'(즉 그의 전 영혼-지각.감정.뜻.양심)은 "만물보다 심히 거짓되고 부패하였다"(렘 17:9). 달리 말하면 '전적으로 부패' 하였다. 즉, 그의 내부의 조내 전체가 부패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명하신다.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죄를 사랑함을 진실로 사랑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렘 4:4,14). 그렇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너희는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라고 명하신다(겔 18:31). 그리고 그렇게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신다.

그런데 사람이 그 자신의 능력으로 이 변화를 효력있게 할 수 없는 이유는 죄의 사슬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반대하는 정신은 타락의 본질이다. 따라서 변명하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서에 순응하는 것만이 인간의 의무이다. 그래서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하신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