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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62] 그리스도인의 출발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62] 그리스도인의 출발

En Hakkore 2024. 4. 20. 10:55

6. 타락의 회복(7)

새로운 출생이라는 말로 중생을 취급할 때 많은 저술가들이(옛날의 나도 포함하여) 자연적인 출생으로부터 유추하여 설명한다. 그런데 성경은 결코 그것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육채적 출생은 그 전에 개념조차 존재치 않았던 한 완전한 인격을 가진 피조물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지만, 하나님에 의해 중생한 사람은 거듭나기 전에도 한 완전한 인격을 가졌었다!

이 말에 대해 그것은 신령한 인격은 아니었다고 논박할지는 모르겠다. 사실이다. 하지만 영과 물질은 반대 개념임을 명심해야 하며, '영적인 것'을 구체적인 어떤 존재로 말하거나 생각하면 우리 스스로 혼란에 빠진다. 중생은 여태껏 존재치 않았던 한 인격의 창조가 아니라 이미 있던 인격이 신령해지는 것이며,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불능했던 사람이 새로와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기능들에게 새롭고 색다른 경향을 제공하는 원리, 혹은 '성질, 혹은 생명이 부과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두 개의 독특한 인격으로 구성되었다고 간주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주의해야 한다.

약 백년 전에 영국에서 발행한 한 책자가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는 실족(backslide)할 수 없음'을 증명하려는 책이었는데, 그것은 정통교단 내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심각한 악영향을 끼쳤다. 그 책에서 저자는 "거듭난 사람은 두 가지 본성을 소유한다.

죄의 옛 사람과 은혜의 새 사람이 그것이다. 죄악의 옛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전혀 자라나거나 진보할 수가 없다. 또한 새 사람은 죄악의 세계로 결코 돌아갈 수도 없으며 소량의 죄악도 마실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실족할 수가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이런 망상에 대해 한 평론가는 사냥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독일의 한 궁중 주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그 허구성을 폭로하였다. 어느 날 그 주교는 주교관(主敎冠)을 쓰고 사냥하는 일의 부당함에 대해 우정어린 충고를 받았다. 그러자 그 주교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 물론 전 주교로서가 아니라 공작으로서 사냥을 합니다만, 만일 사냥하다가 목이라도 부러지는 날엔 공작(prince)은 지옥에 갈 것이 뻔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교야 지옥에 갈리가 있나요!" 그의 어리석음을 얼마나 잘 보여주는 우답인가!

'옛 사람'과 '새 사람'은 동일인에게 속해 있다. 주교와 공작의 신분이 나뉠 수 없듯이 그 둘도 그 ㅅ람과 나뉠 수 없다. 실족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의 어떤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다. 위의 저자의 추론은 충분히 전개하진 않았지만 하나의 그릇된 이해로부터 출발한 그릇된 논리적 결론이다.

신자 속에 있는 '두 가지 본성'을 지나치게 확대하여 보았기 때문에 정작 그것들의 소유주인 사람과 그의 책임성은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그것은 마치 '육신'이나 옛 사람도 실족할 수 없고 '영'이나 새 사람도 실족할 수 없다는 식의 어리석은 이야기다.

넘어지는 것은 두 가지 본성(혹은 원리)을 소유한 사람이며, 따라서 하나님께선 사람에게 책임을 물으시고 징벌하신다. 만일 신자들이 경계하지 않으면 책임을 삭감하시키며, 그들의 지나친 죄성을 가볍게 처리하는 그릇된 가르침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비난보다는 동정을 받아야 된다고 핑게를 늘어놓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청년이 많은 점에서 아이들과 다르다. 또 장년은 미숙한 청년과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각 단계별로 성장해 가는 동일한 개인이며 같은 사람이다. 우리 인간은 언제나 도덕적 존재로, 책임있는 피조물로 살아간다.

중생할 때 경험하는 내적 변화의 성질이 어떠하든지 간에(그 경험의 특성을 어떻게 정의하든지 간에), 또 부활할 때 우리 몸이 어떻게 변하든지 간에, 우리는 창조시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대로의 모습과 기본적 인격을 결코 상실하지 않을 것이다.

전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동일인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만 한다. 타락시의 영적 생명의 부패나 새로운 출생시의 영적 생명의 회복이나 모두 인성(human nature)을 소유한 인간 존재의 실재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타락했다고 해서 인간 이하가 된 것도 아니고, 중생했다고 해서 - 하나님과의 관계에 변화가 왔긴 해도 - 인간 이상이 된 것은 아니다. 인간을 구성하는 것들은 상실될 수 없으며 중생시에 우리에게 부여된 것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개인성과 인격적 신분은 책임있는 존재로서 영원히 불변한다.

Arthur W. Pink 영저인 실천 p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