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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60] 그리스도인의 출발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60] 그리스도인의 출발

En Hakkore 2024. 4. 20. 10:54

6. 타락의 회복(5)

타락함으로 인간은 어떤 것(something)을 잃기도 했고 얻기도 했다. 그것을 물질적인 어떤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 당신이 원한다면 그 어떤 것을 '성질'(nature)이라고 해도 좋다. 인간이 상실한 것은 성결(holiness)이고 얻은 것은 죄(sin)이다.

이 양자는 모두 실체가 아니라 도덕적 특질이다. '성질'은 어떤 구체적 실재가 아니라 실재나 물질의 특성을 묘사하는 말이다. 중력의 '성질'은 끄는 것이며 불의 성질은 타는 것이다. '성질'은 유형이 어떤 것이 아니라 행동을 일으키는 추진력이며 또한 지배력이다.

보다 좋은 말을 원한다면 '본능'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 엄격히 말해서 '성질'은 우리 존재의 기원에서부터 소유하고 있는 것이며, 그 인간성(humannature)이 우리를 천사의 성질을 가진 천상의 피조물들로부터 구별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자의 '성질'(사나움)과 독수리의 성질(썩은 고기를 즐김), 그리고 양의 성질(부드러움)등에 대해 말할 수도 있다. '성질'은 피조물이 출생시부터 소유하고 있는 기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분여된 성결이나 은혜를 '선의 원리'(a principle of good)라고 부르고, 내주하는 죄나 '육신'을 '악의 원리(a principle of evil)라고 부르겠다.

이 두 가지는 모두 각각의 독특한 성질들에 맞추어 행동하도록 지배하는 보편적 기질들이다. 한편, '성질'은 출생시부터 갖고 있는 것이며, 우리의 인간성이 천상의 피조물들과 수성(獸性)을 지닌 삼림의 짐승들로부터 우리를 구분지어 준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으면 많은 사고(思考)의 혼란을 피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본능적으로 받은 성질과 타락시나 중생시에 '돌발적으로'(비본질적으로) 받은 성질 사이의 차이점을 조심스럽게 구분한다면, 주께서 우리 인성을 취하신 사실을 이해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는 줄 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셨을 때 그는 그 자신위에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모든 관점에서 영(눅 23:46)과 혼(요 12:27)과 몸(요 19:40)을 가지신 참 사람이셨다.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히 2:17). 그렇지 않으면 그는 그들의 구원자와 중보자가 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불가해한 하나님의 성육신의 신비를 다 설명했다고는 할 수 없고 단지 불가해한 하나님의 성육신의 신비를 다 설명했다고는 할 수 없고 단지 신비의 기본적 사실을 진술한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부패성을 유전받비 않으셨다. 그 부패성은 인간의 본질적 요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출생하셔서 줄곧 흠 없는 순결상태와 거룩상태로 사셨다. 인성을 취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죄에 의하여 오염되지 않으셨다. 따라서 '아담의 아들' 이라는 명칭을 붙여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눅 3:38).

일반적으로 타락으로 인간이 '죄성'(sinful nature)을 소유케 되었다고 할 때 영이나 혼에 비교될 만한 어떤 것이 그의 존재에 첨가되었다고 말하면 그것은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 악의 원리가 그에게 들어 왔다고 해야 한다.

이 악의 원리(the principle of evil)는 서리가 과일 속에 침투하여 과일을 썩게 하듯 인간 존재의 모든 부분을 부패시킨다. 성결에 의해 영향받고 적용되던 인간의 모든 기능이 이제는 죄로 오염되어 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인간의 행위를 관장하던 영적 성벽과 고유성이 존재의 법칙이 되는 대신 육적 성향이 존재의 법칙이 되었다.

전에 사랑의 대상이던 것이 미움의 대상이 되었고 전에 미워하던 것을 이제 사랑하게 되었다. 부패성과 범죄성이 그를 지배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에게 할 책임이 있으며, 그 일을 실패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일보 더 전진하여 그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며 그의 모든 기능들을 하나니께 봉사하는 일과 영광 돌리는 일에 사용해야 할 책임이 있가고 말씀하신다. 그 일을 스스로 거절할 경우 적절한 심팜을 받게 될 것이다.

은혜의 이적은 인간의 파멸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며, 타락시에 발생한 일에 대한 회복의 시작이다. 이제 이 사실을 성경을 가지고 증명하고 이 생각이 우리의 발명품이 아님을 입증해 보이겠다. 그리스도를 '마지막 아담'으로 지칭하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이 첫 아담이 저지른 잘못을 교정하기 위해서-비록 선택된 백성에 한하기는 하지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예언의 영이신 성령께서 주님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다. "내가 취치 아니한 것도 물어주게 죄었나이다(restored)"(시 69:4). 좀 더 부연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아담이 타락하여 상실했던 것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회복시켜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명예와 영광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성령과 성결을, 그리스도껫 그의 백성들을 위해 이루신 공로는 성령께서 사역하시는 근거가 된다. 중생시에 그들의 본래의 순결이 회복되기 시작하고, 그들의 원래 상태가 회복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위대한 변화가 "성령의 새롭게 하심"(딛 3:5)으로, 즉 영적 생명의 갱신과 회복이라고 불려지는 것은 마땅하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