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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50] 그리스도인의 출발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50] 그리스도인의 출발

En Hakkore 2024. 4. 19. 11:46

5. 하나님의 제작품(6)

'신의 성품' 이나 '도덕적 속성'은 때때로 "하나님의 생명"(엡 4:18)이라고 불린다. 그것이 생명력있는 행동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때론 "그의 형상"(골 3:10)이라고도 하는데 "의(義)와 진리의 거룩함"(엡 4:24) 내지는 3절의 "생명과 경건" - 영적 생명, 영적 은혜,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 - 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신의 성품'이라고 불린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유전하시는 생명력있는 작동원리(a vital princple of operation)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관한 구원 지식이 기록된 후에 친숙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썪어질 것을 피하여..." 개인적으로 우리는 탁월한 강해자 Thos. 맨튼과 유능한 죤 릴리(Jhon Lillie)가 그런 것처럼, 이 말씀을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의 앞에 두어야 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도는 여기서 인간의 책임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롬 13:12; 엡 4:22-24에서 그러는 것처럼), 하나님의 작동(the Divine operation)과 작동의 결과들을 취급하기 때문이다.

새 사람을 입기 전에 우리가 먼저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과 성화로 나아가기 전에 먼저 절제하는 일이 필요한 것은 진정 사실이지만, 사도가 여기서 열어 보이려고 하는 진리의 국면은 그것이 아니다.

복음의 소리가 인간의 도덕적인 기능에 전달될 때의 약속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 3:15,16)는 것이다. 그러나 영적인 일에 관한 한 비중생인은 그의 도덕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비중생인이 그것을 발휘하기 전에 먼저 은혜의 이적이 일어나서, 그에 따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 수 없는 주권적인 방식으로 생명을 분여해 주셔야만 그가 믿을 수 있는 것이다(요 1:12,13; 요일 5:1). 즉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은 구원과 "진리를 믿음"보다 선행한다!(살후 2:13)

같은 방식으로,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는 것도 우리가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는 것"보다(비록 의식은 못한다 하더라도, 시간적으로가 아니라 그 일의 성질상 그리고 경험상) 선행한다.

위의 단락에서 지적하려고 했던 바를 젊은 설교자가 혼돈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그의 진군의 순서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는 그들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그들이 해야 할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내리누른다.

그리고 긍휼히 여김을 받기 위해서 그들의 '길'과 '생각'을 버리라고 명하여, 구원받기 원한다면 '회개'하고 '믿으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치 불더미 속에서 타고 있는 장작들을 갑자기 끄집어내는 식의 그런 설교를 기뻐하실까?

만일 하나님께서 그런 식의 설교를 기뻐하신다면, 그것은 구원받은 청중들에게 그런 설교를 했을 때이리라. 하나님께서는 젊은 설교자가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그들의 속에서 설득하는 은혜의 이적의 성질에 대해 이해하기를 바라신다. 위의 단락에서 지적하려고 노력했던, 즉 새로 출생한 영혼 속에서작동하는 신적 은혜의 국면들, 베드로후서 1:3,4에 나타남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던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Having escaped the corruption that is in the world through lust). 이 일은 먼저, 하나님의 역사에 의하여 그리고 나서 우리 자신의 기능으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기" 때문이다(빌 2:13).

내주하는 죄(부패)는 여기서 '썩어질 것'(corruption)이라고 표현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최초의 순결을 망쳐 놓았고, 우리를 원시상태에서 타락시켰으며, 그리고 오염시키며 황폐케 하기 위해 그것의 성질과 효능이 계속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썩어질 것'(corruption)은 그것의 원천과 좌소를 우리의 '정욕'(lusts)에다 둔다. 즉 부패한 감정과 욕망에다 둔다. 이 "썩어질 것"을 사도 바울은 "악한 정욕"(evil concupisence)이라고 표현했는데(골 3:5), 왜냐하면 그것이 지고선(supreme good)이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흘러나오는 유일한 곳인 마음 속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욕'(lust)은 언제나 '성질'(nature)을 수반한다. 둘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썩어질 것들은 '정욕으로 인하여'(through lust) 생겨난 것이다. 즉 과도한 욕망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정욕은 모든 비합법적적인 사상과 모든 악한 생각의 기저에 그 자리를 둔다.

만일 인간의 마음 속에 '정욕'이 없다면, 즉 지각이나 상상 속에 과도한 욕망이 없고, 또 인간을 충동하여 어떤 좋지 않은 일을 하게끔 하는 어떤 갈망이 없다면 세상은 인간에게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다. 잘못은 황금에게 있는 것이 아니하 사람을 옭아매는 탐욕의 정신에 있고, 또 포도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과도한 욕망에 있는 것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