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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49] 그리스도인의 출발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49] 그리스도인의 출발

En Hakkore 2024. 4. 19. 11:45

5. 하나님의 제작품(5)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 1:3,4).

이것은 어떤 특별한 국면에 대한 서술이 아니라 경험적 구원에 대한 일반적인 묘사이다. 그런데 이 구절에는 다른 곳에는 없는 한 두 가지의 특별한 표현들이 있으므로 특별한 숙고를 요한다. 초두어 "...으나"(According as)는 '...인 까닭에'(Forasmuch as)나 '...하므로'(Seeing that, R. V)로 보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비교의 표준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3절과 4절이 5-7절의 권면의 근거를 형성한다는 것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첫째, 우리는 영적인 어떤 것들을 부여받는다. 그것은 '신기한 능력'(Divine Power)으로 가능하다. 에베소서 1:19은 그것을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라고 표현한다. 이것 외엔 그 어느 것도 죄와 허물로 죽어 있는 영혼을 소생시키거나 죄와 사단의 종들을 자유롭게 해줄 수 없다.

그 신기한 능력은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복음 안에서 그것들을 단지 제시만 한 것이 아니라 은혜로 부어졌고, 실제로 전달되었다). 이제 필요한 일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속에 있는 영성을 보존하는 것과 온전케 하는 것이다.

그 수납인들은 전달되는 과정에서 철저히 수동적이었고, 신적 은혜의 최초 역사를 의식조차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까지나 그런 상태에 머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둘째로 스 수여에는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the knowledge of Him)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지식'(the knowdge of Him)은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계시를 의미하는데, 그 계시는 하나님의 탁월하심에 대한 참되고, 영적이고, 변화된 인식을 사람들에게 분여해준다. 그 지식은 우호적인 수납자들로 하여금 "내가 주에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하고 찬양하게끔 한다.

하나님은 이제 거듭난 영혼에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살아계시고 복되신 실제이기도 하다.

세째로, 하나님께서 중생인들에게 분여하신 그 영적인 '지식'으로 인해, 그들은 모든 은혜의 이익들과 그의 사랑의 선물들을 부여받는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신의 성품에 참옣는 자가 되게...," "이로써"(whereby)는 "자기의 영광과 덕", 좀더 잘 표현하면 "그의 영광과 힘 또는 능력"이란 말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단지 말로서만이 아니라 실제 성취된 약속이다. "그의 영광과 능력으로"는 앞절의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와 같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라는 말씀은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라는 말씀과 상응한다.

후자는 전자를 상술한다. "보재롭고 지극히 큰 약속(promises)들"은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원시적이고(창 3:15), 기초적이고, 중심적인 인격적 구주(a peronal saviour)에 관한 약속이며, 또 그리스도에 의하여 약속된 성령의 선물과 강림에 관한 약속이다. 후자는 "아버지의 약속"이라고 표현되어 있다.(행 1:4)

이 두 가지 약속 - 하나님의 구세주에 대한 것과 하나님의 영에 대한 -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해 섬긴 것"(벧전 1:12)이라고 할 때 그 섬김의 내용들이다. 이 약속들을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라고 표현한 것은 정말 적절하다.

왜냐하면 이 구세주와 성령을 모시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기 때문이며, 또 그리스도는 그들의 생명이, 성령은 그들의 성화자(sancitifier)가 되기 때문이다.

또는 3절이 전해주는 대로, 이 지식이 부어진 후에 곧바로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즉, 약속이 성취되고 또 성취되어 가는 것을 경험함으로써) 너희로...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해석상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신의 성품은 "하나님의 본질이 아니라 공유적인 탁월함들을 의미한다. 그러한 도덕적 속성들은 피조물에게 분여될 수 있다. 그것을 절대적 완전성으로 생각해서는 안되고 우리의 현재의 상태와 능력에 일치하는 어떤 것으로 이해해야만 한다."(Thos. Manton)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