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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34] 그리스도인의 출발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34] 그리스도인의 출발

En Hakkore 2024. 4. 18. 17:49

2.시대적인 변화(4)

사도는 특별한 지엽적인 문제로서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과 백성들에게 수여하시는 풍성한 보상을 논한 후에(5:1-10), 사역자에 관한 주제로 돌아와서 그들의 기원문제를 다룬다(11-14절). 3장에서 그의 사도성을 옹호할 때처럼 여기서도 그는 중요한 교리적 교훈을 끼워 넣는다.

먼저, 바울이 그의 반대자들을 침묵시키기 위해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반대자들의 입을 봉하려 한다는 사실에 주의해야만 한다(12절). 또 그는 그의 적들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다음에 따라오는 구절에서 그는 반대할 수 없는 사실을 추출해낸다.

"만일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었으면, 그러면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우리가 판단하기 때문에" - 이것은 가장 그릇된 오역이다. R. V. (Revised Version...역자주)는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해 죽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다"라고 하여 바르게 해석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위해서 죽어 주신 사람들이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것은 비중생인들을 위함이 아니다 라는 사실을 언급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울이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의 결과로서 따라오는 법적 효력에 대한 것이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사도는 여기서 하나의 신학적 원리를 내세운다. 그것은 언약적 대표원리라고 표현된다. 한 사람의 행동은 율법의 견지에서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행동이다.

은혜로 택함받은 사람 전부가 그들의 보증인(Surety)의 죽음 속에서 법적으로 '죽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율법의 요구 내지는 하나님의 통치의 목표에 관련되는 한, 선택자 모두가 개인적으로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무엇에 대하여 '죽었는가?' 그들의 죄의 결과와 율법의 저주에 대해서인가?

그렇다. 비록 이것이 여기서의 주요 관심사는 아니긴 해도 사실이다. 그러면 주요 관심사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그들의 육체적인 옛 신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철저한 사회에서는 더 이상 어떤 지위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죄에 대하여 뿐만 아니라 모든 혈연관계에 대해서도 죽었다. 죽음은 모든 차별을 평등하게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부정하는 면이다. 사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적극적인 면을 언급한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은 그리스도와 부활의 터 위에 서 있는 그의 교회와의 합법적인 하나됨을 말한다.

그가 저주를 받았을 때 그들도 율법 안에서 죽었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살아났으므로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야'만 한다. 또한 그리스도와 법적으로 하나이기 때문에 그를 위해서 살아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죽으심 만큼이나 대리적이다.

각 개인은 이 두 사건의 대상이다. 이 합리적이고 복된 진리와 사실의 타당성이 바울 사도에게는 즉각적으로 명백하다. 그리스도와 유대교와의 관계는 그의 죽음으로 종결되었다. 그가 무덤에서 나올 때 그 관계는 전적으로 새로운 부활의 터 위에 세워졌다. 이것은 그가 법적으로 대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이상에서 지적해 온 바는 16절에서 보다 명백하게 드러난다. 거기서 사도는 그가 증명해 온 것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끌어낼 결론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육체대로(after thr flesh) 사람을 아는 것은 그의 자연적 상태, 즉 인종 특색을 따라서 그를 인지하는 것이다. '육체대로'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그를 '다윗의 자손' 즉, 유대인의 메시야로 승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은 이런 모든 관계를 무효화하였다.

그의 부활은 그를 새롭고 보다 높은 관계로 인도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시에 바울은 어떤 사람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또는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으로 알아 그분을 존경하기 때문에 관심을 보인 적은 없고,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를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주로서 찬양하기 때문에 관심을 보인 적은 많다.

고린도 교인들을 유대교화하려는 사람들의 편파성은 결정적으로 폭로되었다. 17절은 지금껏 문맥 속에서 확립시켜왔던 것으로부터 위대한 결론을 추출하여 진술한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