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영적인 실천 33] 그리스도인의 출발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33] 그리스도인의 출발

En Hakkore 2024. 4. 18. 17:48

2.시대적인 변화(3)

고린도후서 3:7-11에서 사도는 두 세대의 직분을 대조시킨다. 사도는 여기서 - 세대주의자들이 잘못 가르치는 것처럼 - 은혜(이 장에 이 단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를 도덕률(the Moral Law)과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유대교를 응가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바울이 여기서 십계명을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오히려 어떤 견지에서 보면 모세의 율법 전체를 언급하는 것이며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15절)라는 참고문은 일차적으로 의식법과 관련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그 의식법에는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사어에 관한 많은 예표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유대인들은 그들의 육체성 때문에 그 예표들을 식별해 내지 못했다. 유대교는 '죽음의 직무'이다. 도덕률은 자기 의(self-righteousnedd)를 의지하는 자 모두를 죽이기 위해 도안되었다.

도덕률은 온 세상의 죄인들을 정죄하여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간다. 그리고 그것은 죄인 구원의 절박한 필요를 또한 계시한다. 의식법은 그것의 제사장직과 제사와 더불어 하나님의 비견할 수 없는 거룩하심과, 엄격한 공의 못지않게 인간의 죄책과 오염을 보여줌으로써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제물들이 죽임당하는 바깥 뜰의 놋단은 유대교가 '죽음의 직무'라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증언한다.

옛 언약의 직무가 죽음의 직무였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영광스러운' 것이다. 유대교는 인간의 발명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조덕적 완전함에 관한 엄격하긴 해도 영광스러운 계시가 포함되어 있다.

그 안에는 인간의 기이하고 축복된 예시와 구속주의 직무와 사역이 들어 있다. 그 안에는 또한 현명하고 필요한 포장도로가 있어서 기독교의 발단과 확립을 가능케 해준다. 모세가 산에서 여호와와 대면한 후에 백성들에게 돌아올 때, "영광"이 그 언약의 중보자의 얼굴에서 예시되었다(신 5:5; 갈 3:19).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니라"(출 34:29). 그의 얼굴의 광채는 옛 언약이 함유하고 있는 영광을 상징한다. 거기에는 주목할 만한 두 개의 국면이 있다.

첫째, 그것은 단지 외적인 것이다. 그런데 은혜의 영광스러은 사역은 새 언약의 수혜자들의 내부에서 일어난다. 둘째, 그것은 모세 얼굴의 속히 사라진 광채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사라질 영광이다. 그런데 새 언약가 관련된 영광은 "쇠하지 아니하는"(벧전 1:4)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영광을 봄으로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라."(고후 3:18) 고린도후서 3장과 4장을 주의깊게 읽은 사람이라면 바울이 고린도후서 5:17에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첫째로, 그는 우리에게 3:7에서 옛 언약과 관련된 영광은 "없어질"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둘째로,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11절)고 말한다. 옛 언약과 그 언약의 직무는 단지 당대적인 것이며, 그 당시에 사라져 버리기조차 했다. 황소와 염소의 제사는 원형이 나타났으므로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세째로 13절에서 사도응 한층 더 강한 언어를 사용한다. '없어질(철폐될) 것'이 그것이다. 먼저번 서신(13:10)에 바울은 다음과 같은 금언을 남겼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그러므로 바울은 새 언약이 옛 언약을 무효화시켰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본래 옛 언약은 사라질 존재 그 이상의 어떤 것으로 제정된 것이 아니었다. '지나간 이전 것들은' 할례, 성전제사, 레위 지파의 제사장직, 의식법 전체, 한 마디로 유대교를 나타내는 모든 것들이다.

고린도후서서 4장에서 사조는 동일한 주제를 계속 취급한다. 1절의 "이 직분"은 3:6의 "새 언약"의 직분이며, 8절의 "영의 직분" 또 9절의 "의의 직분"을 말한다. 3:14에서 유대 민족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는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라고 평한다.

그리고 4:3, 4에서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즉, 그 종교의 지도자 사단)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했다"고 선언한다. 3:9에서 그는 옛 언약과 관련된 '영광'도 과연 있기는 하나 새 언약의 영광은 그것을 '능가한다'고 확언한다.

4:6에서 이것에 대해 보다 자세히 설명한다. 광야생활 동안 이스라엘을 인도했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외현적이며 당대적이었지만, 여호와께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내적 조명이 신자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거한다. 옛 것을 대치한 '새 것'의 측량할 수 없는 우월함! 8-18절에서 사도는 그 직분의 성실한 수행에 수반되는 시련들을 언급한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