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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30] 그리스도인의 출발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30] 그리스도인의 출발

En Hakkore 2024. 4. 18. 17:46

1.이전 것은 지나갔으니(3)

한 탁월한 주석가는 그의 고린도후서 주석에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약성경에서(사 43:18,19; 65;17) 메시야의 강림에 의하여 산출되는 결과는 만물의 새롭게 됨이라고 묘사되어 있다. 구속주의 왕국의 최종적인 극치도 동일한 형태로 묘사되어 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5). 모든 신자들에게 일어난 내부의 영적인 변화도 동일한 말로 설명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 변화는 위대한 우주적 변화의 예표이며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만일 마음이 불결한 새둥우리에 머물고 있다면 외부에 나타난 변화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도는 그러므로 만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 사람은 선지자가 예언한 것과 유사한 변화와 이 땅이 천국이 될 때 우리가 참여할 것과 비슷한 변화를 경험한다고 말한다.

"옛 견해, 계획, 욕망, 원리 그리고 옛 감정들은 다 사라지고, 새로운 참 견해, 새 원리, 인간의 운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 새로운 감정, 그리고 영혼에 충만하여 지배하는 새로운 목적이 도래하였다.

이상과 같은 터무니없는 진술은 교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 의해 주장된 전형적인 진술의 한 예이다. 이 터무니없는 진술 때문에 많은 하나님의 어린 자녀들이 비참한 노예신분으로 전락하여 버렸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내부에 그와 같은 위대한 변화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과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7)는 하나님의 약속은 새 땅에서나 성취되리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데, 이 터무니없는 진술은 그런 변화가 지금 일어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주석가의 그리스도인 경험이 그의 주장을 그렇게 변조시켰다고 과감히 말한다. 사람이 건전하게 개심할 때 많은 '옛 견해와 옛 계획'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옛 욕망, 원리, 감정' 들도 사라졌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라지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들은 잔존하여 활동적으로 역사하며, 인생의 종착지까지 동행하면서 우리를 성가시게 굴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싸워야 할 부패와 절제해야 할 정욕 같은 것은 없으리라.

정평있는 주석책을 저술했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몇몇 탁월한 주석가들은 고린도후서 5:17을 해석하면서 그런 불합리한 주장을 하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그러나 이 사실도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연약함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말함으로써 설명될 수 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왜냐하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옛날의 모든 것들이 다 사라졌음을 안다. 그의 완악하고, 불성실하며, 마비된 옛 양심은 사라졌다. 억세고, 감각적이며, 부패스럽고, 불신적이고 회개하지 않던 마음도 사라지고... 그리고 무질서하고 오용되며 무절제했던 그의 감정도..., 그는 새로운 사상과 성향, 그리고 새로운 욕망과 기쁨과 일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주석가는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 그 단락을 끝맺는다.

"때때로(즉 전에는) 육신적이었으나 이제는 어느 정도 영적이며, 때때로 세상적이었으나 이제는 어느 정도 그의 대화가 하늘나라에 대한 것이며, 때때로 불경스러웠으나 이제는 어느 정도 거룩하다."

그러나 이 말은 앞에 있는 그의 말과 사실상 모순된다. 그리고 이 말은 사람이 어떤 구절의 핵심적인 의미를 모를 때 스스로 난제를 창조하며, 또 해석을 위해 본래 의미를 변경시키게 된다는 앞의 말에 대한 좋은 본보기이다.

'지나갔다'는 헬라어 단어는 마태복음 5:18,24,34과 야고보서 1:10, 베드로후서 3:10에서 보여지는 대로 매우 강한 표현이다. 그 단어는 어근학적으로는 아니지만 그것의 용법상 제거, 또는 종식을 나타낸다.

고린도후서 5:17에 언급된 '이전 것들'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들이 억제되었거나 혹은 잠시 잠들었다가 새로운 활력과 함께 다시 깨어나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지나 갔다', 즉 완결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몇몇 신학자들이 '이전 것'(old things)을 '아담의 옛 감정과 성향' 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큰 잘못이다.

사람들은 그 학자들의 주장을 통해서보다는 영적 생활의 경험을 통해서 보다 더 정확하게 배운다. 한 나이 많은 저술가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은 어느 정도 만족스럽다.

"부패한 원리, 끝없는 자아, 그리고 육신상태의 옛 사람에게 속한 육체의 정욕, 이 모든 것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세에서는 단지 부분적으로이고, 완전한 사라짐에 대한 소망과 기대는 미래에 둔다."

부분적으로 '지나갔다'고 하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이전 것들'에 관한 학자들의 정의를 의심케 하며, 하나의 개조된 정의를 탐구하도록 강요한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91

●마태복음 5장18,24,34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야고보서 1장 10절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베드로후서 3장 10절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